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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인 인물조명- 이명직 목사(2)1920년대 성결교회 부흥기와 이명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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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4.0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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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성결교회 부흥기와 이명직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이 한국 전도를 시작한지 15년이 되던 1921년에 이르러서는 설립된 전도관의 수가 33개에 이르렀으며, 신자들만 수 천 명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기존의 복음전도관 체제로서는 그 많은 신자들을 치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므로 결국 교회제도를 수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동년 9월에 교회가 설립되었다.


A. 1921년의 대부흥운동

1920년대는 한마디로 성결교회 부흥기라고 할 수 있다. 1907년에 시작된 한국성결교회는 때마침 일어났던 대부흥운동의 열기를 힘입어 성결의 메시지를 강하게 외칠 수 있었다. 그러나 1910년대에 이르러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복음의 선포가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박명수 교수는 그 원인을 선교사와 한국교회 지도자들 사이의 갈등, 한국 교회 지도자들 사이의 불화, 3.1운동 실패에서 기인된 한국민족의 좌절, 1910년대 후반에 유행하던 교회에서의 남녀교제의 스캔들 등에서 찾고 있다. 이 실례들을 우선 성결교회 내에서 찾아본다면 먼저
1910년에 최초의 감독으로 부임했던 토마스(John Thomas)목사와의 문제, 한국성결교회 최초의 교역자인 정빈, 김상준의 탈퇴 사건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교회 내에 있어서 남녀간의 스캔들은 당시의 시각에 있어서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던 것 같다. 그것은 ?활천?
에 실린 다음의 글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남매의 의를 맺는 남녀의 심리는 다 불결한 줄로 안다...그러한 사람들은 말하기를 주 안에서 사랑한다 하되 벌써 마귀의 최면술에 걸린 지가 오래다. . . 만일 남녀 간에 성결한 자이면 공연히 시간을 허비하여 편지질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러한 편지는 회답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남녀 간에 편지 왕복에 대하여 주의하라. 이는 사탄의 무선전신이다. . . 모든 남녀들이여-만일 객(客)적은 편지 쓸 시간이 있거든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것이 좋지 아니한가. . . 남녀가 교제하는 중간에는, 악마가 세계에 눈을 뜨고 활동하는 오묘하고 비밀한 계책이 있는 줄로 아노라”
그러나 한국성결교회는 이러한 모든 문제를 극복하고 1920년대에 들어와서 새로운 전진을 시작하였다. 여기에는 조직적인 교회를 설립했다는 제도적 측면과 일본에서 철수한 동양선교회가 그중심지를 한국으로 이동시킴에 따른 물량적 지원, 그리고 무엇보다도 1921년
경성성서학원에서 일어났던 대부흥 운동을 그 원인으로 들 수 있겠다. 특히 1921년의 대부흥 운동에 대해 이명직은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과거 5, 6년동안 흑암을 지내온 학원은 이때에 비로소 모습이 새롭게 되었나니, 이번의 부흥은 실로 학원 일부에만 부흥이 아니라, 우리 성결교회를 영적이나 역사적으로 개조하는 부흥이더라. 이 부흥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회개하고 거듭나고 성결의 은혜를 실제로 받은 수양생뿐 아니라 교역자도 다수이었다. 그래서 이 불길은 지방 각 교회에 파급이 되고 다른 단체에까지 중대한 영향을 주게 되었다. 우리 성결교회의 참된 부흥의 운동은 이때부터 비로소 일어나게 되었나니라”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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