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4.6.17 월 21:07
상단여백
HOME 교회 선교
김유신 선교사의 부룬디 선교편지 (8)부룬디에 도착해서 초기 정착과정 1년은 끊임없는 영적전쟁의 기간이었다. 실제로 선교지에 파송된 많은 초임 선교사들이 현지에 적응하지 못해서 1년 내외로 많이 떠난다고 한다. 아마도 선교사의 정착을 싫어하는 어둠의 영이 선교사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10.07.08 15:00
  • 호수 0
  • 댓글 0

                

정착과 영적 전쟁

부룬디에 도착해서 초기 정착과정 1년은 끊임없는 영적전쟁의 기간이었다. 실제로 선교지에 파송된 많은 초임 선교사들이 현지에 적응하지 못해서 1년 내외로 많이 떠난다고 한다. 아마도 선교사의 정착을 싫어하는 어둠의 영이 선교사를 쫓아내기 위해서 무단히도 노력한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현지 환경에 적응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적도 가까이 있는 나라이기에 연중고온일 뿐더러 우리가 도착한 1월은 덥고 습한 우기기간이었다. 그래서 아내와 아이들을 아토피 피부염이 날마다 괴롭혔다. 한낮의 더위에 체력이 저하되고 면역성이 약해져서 상처부위가 덧나서 곪기 일쑤였다. 그리고 모기뿐만 아니라 이름 모를 벌레들에게 물려 괴로움을 당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초기에 가장 어려웠던 것은 아이들이 주일예배 후에 밤이면 어김없이 고열에 시달리는 것이었다. 부룬디 현지 교회 예배는 보통 9시에 시작해서 12시나 1시쯤 끝나는데, 예배시간에 춤을 추면서 예배드리기 때문에 흙바닥의 먼지들이 올라와 교회 안이 뿌옇게 된다. 그리고 한낮의 태양열을 고스란히 흡수하는 양철지붕아래에서 장시간 예배를 드리다보면 진이 빠지게 된다.

게다가 설교하면서 한 가득 먼지까지 마시게 되니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목이 붓고 온 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은 면역성이 더 약하다 보니 쉽게 감기에 걸렸다. 둘째 아이는 14개월에 체중도 9kg밖에 나가지 않아 더위를 이기기가 더욱 어려웠던 것 같다. 둘째의 고열은 해열제를 먹어도 잘 낫지 않았고, 4-5일 간의 고열 후에는 설사까지 해서 필자의 마음을 어렵게 했다. 2~3일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으면 병원을 찾아야 하는데, 적당한 병원을 찾기가 어려웠다. 먼저 감기증상이 없는데 고온이 지속되면 가장 먼저 말라리아 테스트를 하게 되는데, 한화로 검사비는 1500원 정도 밖에 하지 않는다. 워낙 사람들이 말라리아에 많이 걸리고, 검사자체도 간단해서 검사비용이 싸다.

사실 현지인들은 말라리아를 한국 사람처럼 위험한 병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독감이나 감기 몸살정도로 생각한다. 말라리아 약도 1000원에서 2000원 정도이며 일주일치 약을 살 수가 있다. 그런데, 약이 너무 강해서 어지럼증이나 구토, 설사 같은 부작용이 있고, 간과 내장기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한다. 부룬디에 살면서 둘째 성결이는 말라리아 판정을 두 번이나 받았다. 그러나 다른 병원에 가면 말라리아가 아니라고 해서 어떤 결과를 믿어야 할 지 혼란스러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우리와 같은 시기에 들어온 외국 선교사 두 가정이 있었는데, 두 가정 어린 아이들 모두 말라리아 판정을 받고, 말라리아 약을 먹였다가 부작용이 심해져서 결국은 고국으로 돌아갔다.  

두 번째는 사역적인 면에서의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언어나 문화적응도 어려웠지만 현지인들과의 관계가 어려웠다. 끊임없이 요구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프리카 선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당시 선임선교사들의 15여년 사역의 열매로 부룬디에는 필자가 소속된 아프리카 선교회(EMA)에서 관할하고 있는 교회들이 50여 개가 있었다. 그런데 선임 선교사가 오랜 기간 안식년을 떠나면서 필자가 50여개의 교회를 맡게 된 것이었다. 교회가 50개면 문제도 50개가 있다고. 선교사 사무실로 문제들을 가지고 매일 찾아오는 교회 리더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컥 내려앉았다. 현지 리더들은 신임 선교사를 15년 사역한 선교사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폭우에 교회 벽이 무너졌다고. 지붕이 샌다고, 자녀들의 학비가 없다고. 병이 걸려서 약을 달라고……. 가지고 오는 문제들도 각자 다양한 것이 끝이 없었다. 그때마다 도와줄 수 없다고, 지금은 돈이 없어서 어렵다고 말하면서 돌려보낼 때마다 현지 교회 리더들의 뒷모습을 보는 필자의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기독교헤럴드  admin@evanholy.co.kr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