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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권하는 사람들 / 전북지방회 독서클럽우치무라 간조의‘전도의 정신(伝道の 精神)’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6.06 23:21
  • 호수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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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준 목사(모현성결교회)

한국기독교는 경이로운 성장을 이루었다. 불교와 유교가 절대적이었던 나라에서 기독교가 고작 100년여 만에 이 정도의 성장을 이룬 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교회, 수많은 성도, 수많은 목회자가 이 땅에서 배출되었고, 세워졌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 기독교는 이전 부흥의 향수 속에서 여전히 ‘전도’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거기에 쏟는 물심에 비하여 그 반응은 매우 적다 못해 안타깝기까지 하다. 사회는 냉담하고 부정적이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한 여러 의견이 나오고, 새로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신기할 뿐인 전도법들이 성행한다. 시대의 유속을 쫓아 시대의 필요를 읽고 채우고자 하는 상황 속에서 130여 년 전 일본의 한 기독교 사상가인 ‘우치무라 간조’의 신앙사상은 전도자와 교회의 허를 찌른다.

그의 짧은 글들은 전도자가 피해야 할 가장 저급한 질의 전도에서 시작하여 참으로 전도자가 가져야 할 고상한 전도의 모습에 대하여 말한다. 생계와 명예, 그리고 교회를 위한 전도는 사실 전도가 아닌 사업이라 하여도 무방할 정도임을 전자는 말한다. 여기에는 이기와 욕심, 그리고 자아가 늘 자리 잡고 있기에 종교와 복음 전달자의 모습으로는 부적절하다. 나라를 위한 것은 그보다는 고상한 것이지만 그 또한 위기를 벗어날 수 없음을 동시에 짚어준다. 크리스텐둠이 결코 옳지 못한 기독교의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이미 배웠다. 그럼에도 그것을 동경하고 추구하는 어찌할 수 없는 그들의 수준일 것이다. 저자는 전도가 분명하게 하나님을 위한 사업이어야 함을 말한다. 본인은 특별히 하나님을 위한 전도와 사람을 위한 전도를 언급한 순서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전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을 위한 전도의 모습이 진한데 그에 비하여 하나님을 위한 전도는 옅어 보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반드시 하나님을 위한 전도가 우선해야 하며, 그것을 발현시켜야 할 장으로서 사람을 위한 전도로 나아가야 하는 순서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 순서가 뒤바뀌면, 전도의 본질이 변질된다. 전도는 사람을 향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기인하는 하나님의 사업이기 때문이다. 이후에 저자는 올바른 전도에 이어서 올바른 전도자의 모습에 대해서 말해준다. 이 부분은 모든 목회자와 복음전도자들이 반드시 귀 기울여 보아야 할 부분이라 여겨진다. 그는 이상적인 전도자의 상을 제시하는데, 사실 이는 오늘날의 전도에 대한 모습과는 대치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오늘날의 전도는 전도자보다도 전도의 행위와 전도의 결실에 더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도는 전도자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공생애를 통하여 행하신 것은 그들을 세우시고 만들어가고자 하심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전도의 능력과 결실을 약속하시기 이전에 그들이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가 되어야 함을 가벼이 하지 않으셨다. 우치무라 간조의 이상적인 전도자에 대한 모습은 여기에 부합한다 할 수 있을 것이고, 오늘날 한국교회의 전도 모습은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하지 않는가? 개인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상적인 전도자로서 하나님의 사업인 전도를 대하는 그의 고상한 가치관, 전도를 시행하기 위한 그의 신체의 건강, 그리고 이기와 요령을 추구하지 않는 순전한 기질, 전도를 풍성하고 깊게 만들고자 하는 면학, 그리고 분명한 영적인 체험과 단련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결코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전도자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해야 할 복음은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먼저 사람인 전도자를 단기간에 또한 장기간에 걸쳐 변화시켜 나아간다. 이러한 변화를 경험한 전도자가 비로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세워지고, 또 전도자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치무라 간조의 외침은 실상 한국교회에서는 울림을 줄지언정 그 여운이 성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왜냐하면, 한국교회는 전도자가 세워지는 것을 기다려줄 여유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저자가 말했던 가장 질이 낮은 전도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기우이기를 바란다. 모든 과실수나 곡식에게는 그 열매를 맺음에 있어서 정하여진 시간이 있다. 그것을 결코 앞당길 수 없다. 그것은 심음과 거둠의 법칙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전도자는 씨를 뿌리는 열매이다. 그도 열매로 맺어지기 위한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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