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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비밀의 왕국 가야<32>1세기 가야는 기독교왕국이었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3.14 06:02
  • 호수 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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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봉 목사(진주중앙교회 원로)

도마는 어떤 사람인가?

3. 제자 도마

1) 에뎃사(Edessa)

아따이의 선교

예루살렘 멸망 후에 도망친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이 지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함으로 복음이 더욱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의 많은 공격으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힘들어 이방 전도로 전환하였다는 바울의 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동방으로 넘어온 복음은 유대인들이 많이 받아드렸다는 점이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선교로 유대인들에게 혐오감을 주었으나 동방은 유대교의 풍습을 그대로 가지도록 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받아들이기에 좀 더 쉬웠던 것 같다. 사도행전 15장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리는데 이 회의에서 이방인 선교에 유대인들의 율법과 할례의 제도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아주 뜨겁게 논의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이 회의에서 이방인 선교에 전념하였던 바울 일행의 활동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게 된다. 그 결과 예루살렘 서쪽의 선교에서는 이방인의 선교가 힘을 얻게 되었지만, 유대인들은 이런 바울의 선교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되었고 이로서 바울의 선교는 유대인들에 의해서 많은 장해를 받게 되었으며 아울러 유대인의 개종이 많지 못했다. 하지만 동쪽의 교회는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종교생활의 양식을 그대로 계승하였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도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갔기 때문이다. 곧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에게 우선 선교하였기 때문에 반대가 심하지 않았다.

에뎃사에서는 아따이의 제자 아가이(Aggai)와 마리(Mari)를 통하여 중앙아시아에 복음이 전해졌다. 여기서 아가이는 사도들의 교리(Doctrine of the Apostles)에 나오고, 또한 마리는 성 마리의 행전(Acts of St. Mari)에 나온다. 아다이가 45년에 죽자, 왕을 위한 비단 관복(官服)과 관(冠)을 제작하는 그의 제자 아가이(Aggai)에게 계승하였다. 에데사의 아부가르 왕이 죽자 그를 계승한 왕은 아부가르의 아들 만누 5세(Ma'nu V, 50-57)로 그는 아가이에게 설교하지 말고 관복과 관만 만들라고 하였다. 이에 아가이가 “나는 그리스도의 사역자를 떠날 수 없다”고 하자 암살 당하였다. 그는 “전 페르시아의 아시리아인과 아르메니아인과 메디아인에게, 바빌론 주변 여러 나라에, 훈지족(Huzites)과 겔라이(Gelai, 카스피해)에, 인도 국경까지, 곡 마곡(Gog Magog)의 나라까지” 사도직으로 평판을 받았다고 한다. 민가나(A. Mingana)에 의하면 250년경에 시리아어로 쓰인 사도들의 교리(Doctrines of the Apostles)에서 길라니아인들과 마곡인(Magog)들이 사는 지방에 120년경, 아가이가 복음을 전파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브라운(Browne, L. E.)도 카스피해(Caspian Sea) 넘어 사는 알타이계 원시 투르크인(Prototurks)에게 복음이 전해졌다고 하였다. 아가이가 죽을 때에 자신이 계승자를 정하진 않았지만, 그의 동료 마리(Mari)가 계승하였다. 마리는 동방으로 옮겨 세나르(Senar)와 셀류키아(Seleucia)에서 많은 병자를 고치고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마리는 바다라자(Badaraja)에서 33년간의 전도 생활을 마감하였다.

바르다이산(Bardaisan, 154년 출생)이 중앙아시아에 복음 접촉에 대하여 196년에 기록한 에데사의 바르다이산의 여러 나라의 법률서(Book of the Laws of Countries)에서 지금 북쪽 아프카니스탄 박트리아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길라니아인(Gilanians)과 박트리아인(Bactrians, Kuchans)들 가운데 사는 우리의 자매들(기독교인)은 낯선 사람과 교제하지 않는다”는 구절에서, 길라니아는 카스피해 서남쪽의 해안 지역을, 박트리아는 아프가니스탄 북방, 힌두쿠시 산맥과 아무 다리야 사이의 지역이다. 아르벨라의 연대기(Chronicle of Arbela)에 따르면, 이미 페르시아에, 로마 제국의 핍박을 피해 190-250년에 많은 교회를 세웠고 동쪽 쿠르디스탄(Kurdistan) 산맥에서부터 서쪽 카스피해까지 관할권으로 20명 이상의 주교와 17개의 주교구가 있었고, “교회들과 수도원들은 증가하였고 모든 입으로 영화로운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하였다. 또한 “민가나(Alfonso Mingana)는 파르티아 왕실의 기독교에 대한 관대한 정책으로 인하여 전역에 약 20여 교구가 있었다”고 한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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