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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171)영화 이야기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2.08 08:38
  • 호수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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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올드 오크라 해서 커다란 나무의 주변에서 사는 사람들, 혹은 더할 나위 없는 가르침을 주거나 위로해주는 나무가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웬걸 올드 오크는 오래된 펍의 이름이다. 간판의 마지막 글자인 k가 흔들거리다 고개를 숙이고 펍의 주인은 길다란 막대기를 가지고 와서 겨우 k를 반듯하게 만들어 놓는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 고개를 숙이는 k. 올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오래된 폐광촌, 더럼이라는 작은 읍내다. 한 남자가 집을 비쌀 때 전 재산을 들여 샀는데 헐값으로 팔리고 있다며 분노하다가 눈물을 흘린다. 사십대 초반, 그때는 동네마다 반상회를 했다. 반상회를 갔는데 팔십 대 할머니께서 집값 이야기를 하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그때만 해도 철이 없어선지 참으로 생경해 보였다. 아니 저 나이에 집값 때문에 우신다는 거야? 저렇게는 안 늙어야지, 그런 용감한 생각을 했던가. 그땐 알 수 없었다. 팔 십이 되고 구십이 되어도 그리고 백수가 되어가시는 울 엄마를 봐도 사람에게 시간은 변화보다는 자신을 지키는 쪽으로 흐른다는 것을, 눈부시게 피어나 있는 벚꽃 아래 노년들이 주르륵 앉아있을 때 그 벚꽃조차 노년의 체취로 시들어 보이게 한다는 것을 느꼈던 적이 있다. 올드는 사실 모든 것을 함께 낡아 보이게 하는 독특한 힘이 있다. 그렇다고 노년 자체가 실패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올드 오크>를 만든 켄 로치 감독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일상 속에서 서늘한 지점, 실패자가 되는 시간을 응시한다. 그 시간이 내게도 있는가? 돌아보게 한다.   

쇠락한 거리에 시리아 난민들이 들어선다. 원주민들은 조롱하며 돌아가라며 소리친다. 나도 난민들에 대한 시선이 그들과 같았다. 이주민들이 와서 더 힘들어질 텐데, 우리들의 몫인데 저들이 누리질 않는가. 하는 일도 없이 혜택만 받지 않는가. 그런 차가움이 그들을 실패자로 만든다는 것을, 타자를 위한 시선으로 삶의 결이 나누어진다는 것을 노감독은 정확하게 짚어내며 침묵의 장중한 웅변을 토해내는 것이다.   

실패자가 되어가는 그들을 감독은 명료하게 바라보면서도 사람들 속에 있는 따뜻함을 조금씩 끌어낸다. 난민 소녀 야라와 펍의 주인 TJ 사이에 생겨난 우정이 그 도화선이다. 그리고 밥, 그들이 함께 하는 밥은 이미 밥이 아니라 관계며 친절이며 부드러움이다. 함께 하는 밥은 순도 높은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이들, 힘든 사람들을 품지 못할 때 비루한 실패자가 된다는 것을, 멀리 나가서는 품지 못하더라도 품에 들어오는 그 인연조차 떼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절절하게 느끼게 한다.   

<나의 올드오크>를 보고 난 후 아주 오래전에 봤던 켄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지미스 홀>을 다운 받아 봤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는 것 같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여전히 내 마음을 흔들고야 만다. 주인공뿐 아니라 그 주변인들을 다 이해하며 함께 가슴 아플 수밖에 없는 영화, <지미스 홀>과 시대적 시간도 연 이어져 보리밭과 형제처럼 여겨지는 영화인데 보리밭이 가슴 아픈 비극으로 끝났다면 그래서 더 절절하게 가슴을 후벼 판 영화라면 지미스 홀은 상황이 그리 달라지지 않았더라도 약간의 미소가 지어지는 영화였다. 추방당하는 사람을 환송하며 기다릴께요~~~ 손을 흔드는 모습은 슬픔이나 고통보다는 아련한 희망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혹시 그렇다면 젊음은 젊어서가 아니라 희망 때문에 젊어지는 것일까? 

글을 읽으면 작가가 보이고 영화를 보면 감독이 보인다. 켄로치의 영화를 보면 이분은 전형적인 선비님이시다. 군더더기가 없고 사람의 감정을 휘몰아치게 하는 음악도 요란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풍경을 이용해서 사람의 감정을 강화하려고도 않는다. 얼핏 수필처럼 단아하지만 그 수많은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펼쳐내니 어찌 수필에 빗대랴만.  좋은 영화 때문에 삶이 충분히 충일해지기도 한다. 
입춘時. 연두가 오는 곳이 어디쯤인지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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