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4.4.18 목 13:54
상단여백
HOME 기고/오피니언 특별기고
<쓴물단물>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1.24 20:12
  • 호수 604
  • 댓글 0

은퇴 준비를 미리 하며 산술적 계산을 하다가 발생한 언짢은 일들이 종종 들려온다.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이름도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라”던 그 초심이 변질된 거다. 이 찬양은 자신이 부끄러워 부를 수가 없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좁은 이 길 진리의 길 주님 가신 그 옛길 힘이 들고 어려워도 찬송하며 갑니다.”

친구가 원로 김성호 목사님 주택 이사를 축하하기 위해 다녀왔다고 한다. 김 목사님이 몇 년째 섬기는 요양원 얘기를 신나게 하시더란다. “처음엔 극심한 우울증으로 고개도 안 들던 분들이, 한분 한분 지속해서 사랑하며 기도해 드린 덕에 지금은 다 함께 노래 부르고 기뻐하며, 세례도 여러분 받았어. 더 감사한 것은 40여 명 어르신들 중에 코로나 기간에 한 분도 병원에 가거나 돌아가신 분이 없는 기적이 일어났어.” 영적, 심리적으로 회복되니 이적이 나타난 것이다. “내 목회는 늘 기적의 연속이었어. 1959년에 군목 제대하고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서 목회하는데, 지금의 성북교회, 참 가난들 했지. 말도 안하고 먹지도 자지도 않던 한 청년을 찾아가 끌어안고 몇 시간 기도해 주니 입이 열렸어. 돌보아 주다가 신학교에 보냈지. 사랑이 능력이고 기적을 일으켰어. 그런데 이번에도 기적이 있었어. ‘아파트로 이사한 기적!’ 정부가 무주택자에게 주는 혜택을 받은 거야.”

김 목사님은 은퇴자금에 얼마를 보태 5억을 가지고 몽골에 들어가 우물을 파주며 두 곳에 교회를 세우고 예배당을 건축하여 10년 만에 후임자를 세우고 귀국하셨다.

‘법인 예수마을’을 세워놨기에 정부의 박해 중에도 예수마을 교회는 존속할 수 있었다. 귀국 후 거처할 곳이 없어 막막할 때, 목사님에게는 기억도 없는, 신학교에서 가르친 어느 제자가 안부 전화를 했다. 사정을 들은 그 제자가 사업할 때 쓰던 창고에 방을 만들어 드려서 ‘인천 부평구 십정동’에서 이제까지 사신 것이다. 자가 주택이 없어 이번에 정부의 전폭적 지원 대상이 된 것이다. 국가가 임차인으로, 목사님은 매월 20만 원씩 집값을 낸다. 대신 관리비가 무료고, 약간의 생활비를 지원받는다. 게다가 가사도우미가 와서(주 3회) 가사를 도와준다. 비용 없이 아파트에 살고, 생활비까지 도움을 받게 된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루기 위해 땀 흘린 세대의 노고와 국가에 감사하는 목사님 말씀대로 모든 게 기적이다. 내 집 장만할 줄 모르고 다 털어 몽땅 하나님 선교에 바친, 순진무구한 무소유의 성직자, 김 목사님의 노후를 주님께서 보장해 주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민 18:20) 아멘!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