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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책은 꽃이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1.01 21:29
  • 호수 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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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광화문을 걷고 있었어요. 어둑한 해거름 시간, 뭔가 볼에 와 닿았어요. 은행나무 잎이 바람에 나풀거리며 떨어지다가 내 볼을 스친 거예요. 그제야 은행나무들을 보았고, 묘한 하늘이었어요. 희부윰한 구름이 가득 끼어있었고 그 사이로 푸른, 아주 짙은 하늘이 설핏 보이는데 움직이더군요. 아, 구름이 혹은 하늘이 명멸하는 시간이었을까요? 그렇죠. 모든 움직임은 사라짐을 내포하고 있죠.

그 단순한 사실이 체득되는 순간. 혼자여선지, 가을이 깊어가선지, 무수히 많은 사람이 스쳐 가선지 客愁가 다가왔어요. 마음이 서늘해지고 몸은 약간 움츠러들며 뭔가 아득한 느낌, 말이죠. 목로주점의 제르베즈가 이웃집 노인의 주검을 발견할 때 그랬을까요. 더할 나위 없이 초라한 방에서 그녀가 죽음을 맞이할 때, 아니 아직 그녀의 영혼이 채 떠나지 않았을 때, 글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죽음에 대해 아무도 놀라지 않을 때....하긴 그녀는 이미 살아 있을 때도 잊혀 가는 혹은 사라져 가는 중이긴 했어요. 그러고 보면 제르베즈만일까요? 우리 모두 그 길 그렇게 각자의 모습으로 가는 중이잖아요.

붕어빵이 보여 갓 구운 거로 삼천 원어치를 샀어요. 다들 야아 붕어빵...하며 좋아하더군요. 바삭하고 뜨거운 것을 한 마리씩 먹어치웠지요. 십 년이 되어가네요. 한 달에 한 번씩 책 한두 권 씩 읽고 만남을 가진 것이, 특별한 경우에는 날을 바꾸기도 하니까 100% 출석이죠. 책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에요. 그동안 있었던 크고 작은 세상사도 영화나 소설처럼 펼쳐지곤 하죠.

<항암26차 姑息치료...고식이 뭐죠? 아 시어머니 고에 쉴 식이니, 우선 숨은 쉬고 있으나, 우선 당장은 편하나, 그 참 절묘한 표현이네요. 그래도 희망의 끈인 거죠. 제르베즈의 삶이 참 신산하죠. 은근히 소설의 복선도 꽤 많았는데 여성을 주인공으로 그리고 하층민을 주인공으로 한 것 자체가 새로운 시도였으니, 사람의 근원을 보게 만든 글이었어요. 천박한 질투는 사람마다 내재되어 있는 것 아닐까요? 바르가스 요사 책을 읽었어요. 미남이죠? 대통령도 나온 사람이고. 리고베르토씨의 비밀노트는 완전 19금이에요. 에곤 실레의 그림을 그렇게, 마치 그의 글을 위하여서 그림을 그린 것처럼 그렇게 절묘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 지구 반대편 나라라선지 잘 모르겠어요. 성에 대한 개념 같은 것, 황현산의 ‘잘 표현된 불행’은 어려운데 ‘밤이 선생이다’는 밑줄 그어가며 읽었어요. 밑줄은 훌륭한 글에도 긋지만 마음이 통한다는 사인이기도 하죠. 오 맞아...정말 그래....중세의 가을> 중구난방, 좌충우돌, 횡설수설, 그러나 도란도란.

밤이 깊었어요. 돌아오는데 이제 몇 안 남은 이파리들, 자그마한 바람에도 후드득 소리 내며 산화하듯 흩날리더군요. 타오르는 장렬한 시간은 언제였던가, 언제 새순이었는지, 언제 싱싱한 젊음이었는지, 언제 무르익었는지, 나무의 생애ㅡ 참 어렵고 깊죠. 한해에 일어나는 그 무성한 변화들은 부조도 아니고 돋을새김도 아닌 것 같으나 어쩌면 그 모두일지도 모르죠. 나뭇잎 냄새가 깊게 다가왔어요. 바람에 무너져 내리는 회한의 향기였을까요? 가벼운 모습이 여한 없어도 보여요.`

가끔 책은 꽃과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어여쁘게 피어난 꽃에 감탄하는 것은 꽃을 아는 일이 아니죠. 여름에 솟아난 동아와 무참히 보내버린 나뭇잎, 겨울 나목의 침묵을 기억해야만 하는 일이죠.

책에서 답을 얻지 않는 시절이죠. 검색창에 원하는 단어만 치면 무수한 답들이 일렬종대로 늘어서구요. 스스로 생각해야만 하는 일도 검색란을 사용하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일렬종대로 나타나곤 하죠. 몰랐던 지식들이 삽시간에 한 움큼이고, 정보는 너무 많아서 사용하기는커녕 외려 혼란을 자초하기도 하죠. 그렇다고 해서 그 엷음조차 가려질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내 생각이 아닌 남의 생각, 남의 느낌의 내것化는 결국 나의 부재를 의미하는 일일 거예요. 아무리 해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지만 부재를 존재로 오인할 수는 없는 거죠.

독서라는 위대한 습관은 단단한 펀치예요. 어쩌면 가장 확실한 노후대책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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