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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권하는 사람들 / 전북지방회 독서클럽‘나는 왜 불안한 사랑을 하는가’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0.26 07:26
  • 호수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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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은 목사(기성 축복교회)

현대 문화에는 시를 난해한 장르로 여기는 편견이 있지만 문맹률이 높았던 고대 문화는 운율이 있는 시를 구전으로 전하는데 익숙했다. 고대는 산문보다 시를 대중 친화적으로 여겼다. 아가서의 저자는 시골 여인을 사랑한 경험이 있는 왕이거나, 왕을 사랑한 경험이 있는 시골 여인이다. 사랑과 불안은 낯선 대상을 만날 때 동요된다. 아가에는 여러 감정이 나타나지만 특히 사랑과 불안이 숨김없이 표현된다. 애정과 불안은 수치심, 우울, 분노, 질투, 시기, 외로움, 허탈함 등 여러 감정을 만들어 내는 원감정이다. 사랑은 고통의 이면에 그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는 희락이 있다. 고통을 동반한 희락, 그것이 진짜 희락의 본질이다. 누구에게나 반드시 약속된 것은 아니지만, 불안과 미숙의 터널을 지나고 나면 상호 희락을 누릴 수 있는 인류의 보편 경험치가 분명히 있다. 완전한 신적 사랑이 흘러넘쳐 시작되는 것이라면, 인간의 사랑은 자신의 결핍을 보충하기 위한 심리적 역동으로 인해 발생한다. 모든 인간의 사랑의 이면에는 결핍이 있다.

이 책은 솔로몬이 왕으로서 제약된 삶을 살아왔기에 자유로운 여인인 술람미를 사랑한 것으로 묘사했다. 사람은 자기에게 없는 것을 사랑하기도 하며 상실한 것을 사랑하기도 한다. 사랑은 결핍과 관련이 있다. 사랑이 부재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작동하다 보니 사랑의 서사는 결핍을 채우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인간이 끊임없이 사랑할 대상을 찾는 이유는 결핍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안에 결핍이 없다면 외부의 대상에 매혹되지 않는다.

사랑의 관계는 이렇게 닮은 점과 다른 점을 발견하며 기뻐하고 이를 수용해 가는 과정이다. 정체성은 사람이 자기를 이해하는 데 가장 필요한 인식이다. 정체성은 타자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면서 형성된다.

사랑한다는 건 사랑의 대상이 자기 삶의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결핍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시작된 사소한 만남의 대상이 자신의 전부와 맞바꿀 수 있는 존재로 변하는 것은 놀라운 신비다. 이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지만 평범한 연인들의 사랑의 과정에서 나타난다. 사랑의 보편적 신비다. 인간은 존재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이미 가지고 있는 무엇이라도 희생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욕망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결핍을 채워 나가기도 한다.

‘사랑의 대상이 나와 동일하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호적 사랑은 사랑의 대상을 위해 자기의 욕망을 포기해야 하기에 가장 큰 희생을 필요로 하는 사랑이다. 상호적 사랑을 위해 사랑하는 대상의 실재에 직면하는 것은 대상의 결핍을 책임지거나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의 결핍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사랑은 타자의 이해를 통해서 형성되기 때문에 일방적인 반응만을 경험하는 상황에서는 사랑이 오히려 상실된다. 의견과 감정은 상징으로 전달되는데, 서로의 상징이 다를지라도 인정할 수 있는 상호적 관계라면 오히려 사랑은 돈독해진다.

의견이나 감정이 서로 다르면 싸우지 않을까? 동의하지 않을 때도 공감을 통해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하여 같은 의견이 아니라 할지라도, 사랑의 대상의 관점에서 말을 하고 ‘그럴 수 있다’라고 이해하는 표현을 하는 것이 사랑의 대상을 외롭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공감의 자세가 사랑의 대상이 스스로 감춘 이면을 형상화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상호적 사랑을 위해서는 주체 개념으로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주체는 타자와 자기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자기의 의견을 말할 수 있으며 타자의 감정을 읽어 줄 수 있다. 타자의 욕망대로 움직여 주지는 않지만 타자의 욕망을 인정하고 타자의 감정을 수용해 줄 수는 있다. 이렇듯 타자의 감정을 인정하고 수용해 줌으로써 감정을 읽어 준다. 한 번의 공감적 반응이 자기애적 사랑에 몰입한 사랑의 대상을 단번에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인 공감의 반응은 자연스럽게 긴 시간에 걸쳐 사랑의 대상에게도 흘러가 모델링 혹은 사랑의 에너지의 전달을 통해 변화를 가져온다.

사랑의 여정에서 가장 큰 장애는 불안이다. 어떤 형태로든 사랑 문제의 중심에는 불안이 있다. 불안과 사랑은 상호 보완 관계에 있다. 억울함이 없으면 권리를 상실하고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슬픔이 없으면 소중함을 느끼기 어렵다. 사랑의 관계에서 불안이 발생하는 이유는 사랑하고 싶은 욕구,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분명히 관계의 역동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서로의 감정에 영향을 준다. 이를 간과하면 사랑의 여정은 고통의 연속일 것이다. 남녀의 사랑은 추상 개념이 아니라 신체에 남는 실재다. 아가서에 신체적 표현들이 많은 것은 그 저자가 사랑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불안을 동반하는 어려움이 있고 서로의 감정을 셈하려는 허다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다른 경험으로는 만들 수 없는 희락과 치유적 서사를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결과물은 과정의 어려움들을 모두 감당할 만큼 거대하고 위대하게 기억의 중심에 자리 잡는다. 사랑보다 위대한 가치들이 분명히 있겠지만 기억의 중심에는 어떤 형태든 사랑이 놓여 있다.

권요셉, 『나는 왜 불안한 사랑을 하는가』, 도서출판 뜰힘,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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