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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시카고에서의 만찬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0.26 07:15
  • 호수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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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올 봄 시누이 안종순 권사가 한국에 나왔을 때 미국 오면 미국 교회 셀그룹과 목사님을 한국 음식으로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에는 오더를 해서 대접했는데 언니가 오니~ 먼일이라 오케이 했는데 바로 앞에 닥치니 사실 좀 난감했다. 그들에게는 집에서 하는 한식이 처음일 텐데. 잘 안되면 어떡하지?

전형적인 한국 음식 찜 갈비와 잡채를 필두로 제육볶음에 야채 부침개 배추겉절이 고사리와 버섯볶음 시금치와 콩나물 그리고 새콤달콤 비빔국수와 볶음밥을 했다. 커다랗고 멋진 그릇이 음식을 돋보이게 해주었다. 푸른채소와 얇게 썬 오이 그리고 방울도마토와 피망으로 꾸미니 그럴듯한 음식들이 되었다. 손님들은 아이들까지 합하면 스무 명 가까이 되었다. 환타스틱, 딜리셔스 굿이 무수하게 발해졌다. 목사님의 막내 네 살이나 되었을까, 야미 하며 볶음밥을 두 번이나 먹을 때 수고가 사라지는 경험.

아주 인상적인 것은 옥챠드(과수원)교회의 젊은 목사님. 세상에 35살, 키가 엄청나게 커서인지 목소리도 우렁찼다.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예쁜 아내와 아이들 세 명을 데리고 오셨는데 교인들이 너무나 반가워했다. 미국 교회는 심방이 거의 없으며 병원에서 수술해도 메일로 안부를 전한다고 한다. 그러니 이렇게 가깝게 목사님 가족을 만나기가 정말 드문 것이다. 그들의 만남이 그렇게 왁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식사를 하는 것인지 수다를 먹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이었다. 두 시간 반 동안 이어지는 만찬에서 집이어야 가능한 이유를 알았다.

시카고 옥챠드 교회는 교회 건물이 없었다. 동네 시니어 타운을 빌려서 예배를 했다. 그런데도 모이는 인원은 삼백여 명 교회가 세워진 지는 겨우 7년, 물론 원래 옥챠드 교회에서 한국식으로 말하면 분리 개척을 한 교회다. 시누이네 가족도 시니어 목사님의 권유 때문에 이 교회로 출석하기 시작했다고, 옥챠드 캠퍼스교회가 무려 여섯 개며 전부 부흥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교회의 부흥을 눈으로 보았다. 예배는 활기찼으며 젊은이들이 가득했다. 커피와 가벼운 도넛과 함께 자유롭게 서서 이루어지는 친교가 눈에 띄었다. 서로를 반가워했고 안부를 물었으며 만남과 대화를 행복해하는 것이 보였다. 예배가 끝나고 시작되는 30분 정도의 시간을 그들은 사용해서 충분한 친교를 했다.

생명력있는 말씀이 있는 예배가 끝나고 ‘라이트 타임’이 이어졌다. 무려 한 시간이 넘도록, 신기한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설교를 들으며 노트 필기를 했고 그 노트를 가지고 자신들의 생각을 나누었다. 가만 보자. 나도 설교를 들으며 기록을 한 것이 언제였던가. 가벼운 샌드위치와 커피의 만찬으로 말씀을 나누는 라이트 타임이 비밀의 열쇠인가,

라이트 타임의 일원인 중국 여인이 저녁 초대를 했다. 우리는 옛 선비가 되어 영어가 주축이나 가끔 한국어 중국어를 주고받기도 했다 번역기를 통해 내가 말했다. 우리는 옛 시대의 선비가 되어 팔담을 나누는 중이오.

핑은 남편이 중국으로 돌아갔는데 따라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신앙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대학에서 만났던 한국 여인 숙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친절함과 헌신이 놀라웠는데 정말 놀란 것은 그녀가 박사학위 마지막 학기에 아픈 시어머니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던 것을 지금도 잊을수 없노라고, 자신도 예수님을 몰랐으면 시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을 거라는 숙희의 말도 잊을 수 없노라고, 자신이 신앙을 갖게 된 것도 결국 가슴속 빈 마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숙희 때문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고, 입에 조금 맞지 않은 중국음식이지만, 얼마나 그 만찬이 즐겁던지, 아 쟈스민 차는 좋았다.

한 달여 간 미국여행이 끝나가고 있다.

시카고도 가을이 깊어지고 있어 아스펜 종류처럼 보이는 노란색 단풍은 더 맑아지고 환해지며 단풍나무의 붉음은 절정을 향해 치달으며 붉게 타오른다. 홀로도 함께도 얼마나 어여쁘고 눈부신지. 늙음도 저렇게 눈부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홀로도 함께도 어여쁠 수 있다면...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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