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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서종표 목사-4無의 삶을 산 김용은 목사(35)성자의 삶을 산 김용은 목사님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0.26 07:10
  • 호수 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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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목사

필자가 전도사 시절이었던 1986년 12월, 정읍초대교회를 개척하였을 때였다. 당시 이야기로만 듣던 김용은 목사님은 필자에게는 너무 큰 어른이셨기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었다. 마침 필자가 속해 있던 지방회와 같은 전북지방회였기 때문에 매월 열리는 교역자 회의 참석을 위해 군산중동교회에 갔을 때 김 목사님을 처음 만날 수 있었다. 새로 건축한 교회는 왜 그렇게 크던지, 당시 2층 상가(40평)에서 개척하던 필자에게는 너무 부럽고 상상이 가지 않는 규모였다. 이런 교회에서 목회하면 참 좋겠다는 꿈을 갖고 간절히 기도한 적이 있었는데 하나님 은혜로 20년 후, 군산중동교회에서 목회하게 되었다.

필자(서종표 목사, 사진 바로 위)가 1989년 4월 천호동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을 때 당시 목사 안수위원은 총회장을 지낸 증경총회장들이셨다. 그 때 김용은 목사님은 안수위원으로 필자에게 목사안수를 해주셨고 안수 축하 메달도 직접 걸어주셨다.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서 안수를 마치고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정읍에서 목회할 때 목사님께서는 가끔 안부를 물으시고 “목회가 힘들지? 힘내고 잘해라!” 하고 격려의 말씀도 하셨다. 하루는 “서 목사, 내일 내가 너희 교회 간다” 하셨다. 다음 날이 주일이었는데 당시 초대교회는 주일에 1, 2, 3부로 나눠 예배드릴 때였다. “네!” 대답하고 모셨다. 그러기를 세 번 정도. 주일이면 가끔 오셔서 구수하고 은혜스러운 말씀을 전해주셨다. 오실 때마다 전해주신 말씀은 늘 그 말씀이셨지만 설교 때마다 은혜가 되고 이런 큰 어른 목사님께 사랑받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오실 때마다 필자는 꼭 김 목사님께 축복기도를 받았다. 당시 군산에서 정읍까지는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어느 집사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사모님과 함께 오셨다. 마치고 가실 때는 꼭 준비하신 선물도 주셨다. 책(스탠리 탬, 『하나님이 나의 기업을 소유하시다』 )과 한국도자기 접시였다. 김용은 목사님은 항상 뭔가 베풀고 사랑을 주고 싶어서 차에 선물을 가득 싣고 다니셨다. 주기를 좋아하신 목사님, 후배를 사랑하고 격려하신 목사님, 너무 존경하는 목사님이다. 목회자의 표상이요 모델이셨다. 어쩌면 저렇게 사랑이 많고 인자하실까? 감히 얼굴도 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06년 8월 필자가 군산중동교회에 부임하였을 때는 이미 90세가 넘은 연세라 연로하셔서 요양병원에 계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꼭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늘 교회와 교단과 지역 사회를 위해서 “주여!”를 부르짖으며 기도하셨던 분이셨다. 기도 소리가 우렁차셨고 유난히 “주여!”하고 부르짖을 때는 온 성도들의 마음에 큰 울림이 있었다고들 한다. 연로하신 목사님을 뵐 때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라고 고백했던 사도 바울의 말씀이 생각났다. 필자를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시던 목사님이 개척하여 시무하시던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했는데 “잘했다. 잘왔다. 잘해라” 말씀하시며 등이라도 두들겨 주셨을 목사님은 정작 필자를 몰라보신 것이다. “목사님, 저 서종표입니다!”아무리 설명해도 나를 몰라보셨다. 속상하고 눈물이 났다. 과거 같으면 “왔냐? 잘 왔다. 그래, 목회 잘해라. 중동교회, 좋은 교회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격려해 주실 목사님이셨다.

그 후에도 병원에 계실 때 종종 찾아갔다. 목사님은 찬송을 부르면 함께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면 함께 기도하고, 기도를 마치면 아멘! 외치시고 목사님께서 또 기도해 주셨다. 천국 가시는 날까지 늘 주님을 잊지 않고 찬송을 잊지 않았던 나의 아버지셨다. 2008년 7월 말 전교인 여름 산상수련회가 충남 보령에 있는 수양산기도원에서 있었다. 3박 4일 일정 중 마지막 날에 원로목사님이 천국에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모든 것을 중단하고 교회로 돌아와 장례 준비를 했다. 너무 큰 어른이라 조문 오실 분들도 많았기에 준비할 것도 많았다. 가시는 길을 소홀함 없이 잘 모셔야 했고 조문 오시는 분들도 잘 영접해야 했다. 이틀간 집에도 못 가고 문상 오신 분들을 상주의 마음으로 맞이했다. 입관예배, 천국환송 예배순서, 진행, 접대 등...잠도 제대로 못자고 피곤했지만 최선을 다해 모셔야 했다. 나만 아니라 당회를 비롯하여 온 성도들이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예배 순서지, 순서자, 추모영상을 준비하고, 언론사와 전국 교회, 지역 사회와 지인들에게 알렸으며 원근 각처에서 문상 오신 분들을 교회 식당에서 섬겼다.

천국환송예배는 교회 본당에서 온 성도와 가족, 지인들과 함께 눈물로 드렸다. 목사님이 개척하여 38년간 사역하시던 분신과 같은 교회, 그렇게 많은 분들을 사랑하시고 주기만 하셨던 목사님을 떠나보낸 자리는 눈물바다였다. 예배를 마친 후 장지로 모시지 않고 전북대학교 병원으로 갔다. 시신을 기증하기 위해서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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