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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서종표 목사-4無의 삶을 산 김용은 목사(34)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0.18 16:49
  • 호수 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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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목사
아들 김영곤 목사

배도 고팠습니다. 배울 수 없었습니다. 외로웠습니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습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었습니다. 홀로되신 어머님과 어린 동생들과 아버님이 남기고 가신 빚 때문입니다. 빚을 재촉할까 피해 다녔습니다. 아버지 없는 15세 소년가장이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을 본 어른들이 ‘오그라진다’고 걱정하셨습니다. 손가락이 비틀어진 것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키가 더 크지 못한 것은 힘들게 일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여 집사님을 통하여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부르지 못한 나는 하나님 아버지를 여러 번 불렀습니다. “아버지...아버지...아버지...아버지...아버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맹수가 있는 월명산에 올랐습니다. 밤새도록 부르짖었습니다. 정오쯤에 빛이 나타났습니다. 바닷가로 인도를 받았습니다. 일본 후쿠오카행 배를 타고 일본에 갔습니다. 주경야독하며 향학열을 불태웠습니다.

꿈을 접어야 할 위기가 왔습니다. 어머님의 중화상이었습니다. 들판으로 나가서 밤새워 울었습니다. 우리 어머님을 살려주세요. 우리 엄마가 죽으면 안돼요.
빛이 나타났습니다. 그 빛이 현해탄을 건너 고향에 비추었습니다. 어머님이 살아나셨습니다. 돈을 보내고 계속 공부하였습니다.

함경남도 흥남으로 와서 큰 사업을 하였습니다. 두 가지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빚을 갚았습니다. 어머니에게 기와집을 지어드리겠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분 생애에 큰 기쁨 중 하나였습니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과 친지들이 흥남으로 와서 돈을 벌었습니다. 돌아갈 때는 송아지 값을 주어 고향으로 보냈습니다.

나라를 잃은 아픔을 가지고 고향으로 피신해 왔습니다. 농민들도 먹지 못하는 쌀을 일본을 위해 공출하는 것을 보고 면장 책상을 뒤엎었습니다. 갈비뼈가 부러지도록 맞았습니다. 기절을 했습니다.

어머님과 아들이 공산당으로 인해 순교를 당했습니다. 사랑하는 동생 내외와 어린 조카들이 총에 맞아 죽고 우물에 수장되었습니다. 일곱 번의 죽음 앞에서 살아난 나에게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지 물어도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말했습니다. “사람 살려!” 아무리 외쳐도 주님은 들어 주시지를 않으시고, “사람 죽이네!”하고 소리를 질러도 주님은 구출해 주지를 않으시니 이런 일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합니까? 하박국의 외침은 저의 외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서 6절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를...”말씀을 듣고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올 때 빛이 나타났습니다. 빛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갔더니 사람이 나타나 중동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중동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놀라운 부흥을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병든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실명한 자가 눈을 떴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을 모아 주셨습니다. 세 번의 교회 건축을 하였습니다. 성도들의 기도로 세웠습니다. 38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기쁨도 즐거움도 고통도 아픔도 많았습니다.

나는 순교하신 어머님의 긍휼한 마음을 물려받았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가지고, 외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가지고, 배고픈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공라헬 전도사를 8년 4개월 동안 섬겼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교도소에 갇힌 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농아학교와 맹아학교를 세웠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고군산열도에 아홉 교회를 섬겼습니다. 몸이 불편한 장애우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복음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지 달려갔습니다. 은퇴 후에도 계속하였습니다. 집도 땅도 통장도 없습니다. 주님이 저의 전부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약한 것을 아시고 가시를 주셨습니다. 정금 같게 하시려고, 단련하시려고... 나의 가시를 보고 사람들은 우셨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가시를 주셨기에 가시를 버릴 수 없었습니다. 끝까지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마지막까지 힘들고 외로운 길이었습니다. 나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옆에서 힘이 되어 주신 분들이 있습니다. 이제 사랑의 빚만 남기고 떠나야 하겠습니다.

저는 영원한 것을 위하여 영원하지 못한 것을 버렸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생각하고 살려고 했습니다. 나는 본향 집으로 갑니다. 그리운 어머니도 볼 것입니다. 가족들, 성도들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천국에서 만납시다.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아들 김영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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