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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18)반가운 방문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10.11 23:38
  • 호수 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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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기성 복된교회)

가을장마가 제법 세찬 비로 내리는 수요일, 친구로 가깝게 지내는 목사님 방문 예고를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래되고 두툼한 친구로 지금은 인근에 개척교회를 섬기고 계신 목사님입니다. 점심 먹고 나른한 시간에 와 주신 목사님은 명절 앞이라고 그간 우리 교회에서 후원해 드린 일에 감사 선물을 들고 오셨습니다. 황송하지요. 그런데 선물보다 100배 고맙게도 잠이 화들짝 깨는 소식을 놓고 가셨습니다.

“목사님 내년에는 우리 교회로 보내시는 선교비 중단해 주셔요. 우리 성도들이 그런 논의를 했네요.”

오래 선교사로 헌신하셨다가 귀국해서 맨땅에 교회 설립한 지 5년, 가끔 식탁을 장만해서 이런저런 교회 살림살이 얘기로 긴 시간을 나누지요. 사모님이 메밀 소바를 기막히게 잘 만드셔서 주일에 성도들을 대접하십니다. 여름에 그 정갈한 식탁에 초대받아 정을 나누적도 있습니다. 그 말고는 딱히 드러나는 일 없이 매주 성도님 몇 분을 모시고 성경 공부 진행하는 모습을 먼발치서 응원하는 정도였습니다. 말씀을 배워 잘 자란 성도들이 우리 살림을 언제까지 다른 교회 지원에 의존하겠느냐며 어렵지만 자립해 보자는 논의가 잘 이루어진 모양입니다. 성경 공부로 지식을 확장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신앙 실천으로 이어진 모습입니다. 그 소식 갖고 오신 목사님 얼굴에 광채가 납니다. 마침 사택도 좀 넓혀 이사하시게 된 사연까지 듣는 제가 신바람이 납니다. 고맙기 한량없고요.

몇 푼 되지도 않는 지원 끊는 것보다 자립을 선언하는 교회의 자람이 보람되어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목회 환경이 매우 열악한 현실이어서 실은 잘 없는 일이거든요. 각시를 불러 그 자랑스러운 소식을 같이 듣고 또 들어 드높였습니다. 마냥 신바람이 납니다.

각시랑 같이 들어야 할 사연이 있지요. 스물아홉 나이에 처음 담임 전도사로 부임하는 바람에 급히 장가를 들어야 했습니다. 각시 나이 스물네 살, 서울 처녀로 살다 시집온 교회는 하루에 버스가 겨우 두 번 드나드는 아주 시골이었습니다. 목회가 뭔지 모르고 덜렁 부르심에 답하여 달려갔었지요. 그때의 목회를 돌이켜 보면 지금도 머쓱해지는 일들이 많아요.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교역자 회의’에 나가면 선배 목사님들이 하얀 봉투 하나씩을 자랑스럽게 내미셨습니다. 소위 ‘선교비’가 들어있지요. 지금처럼 온라인 입금이 일상적이지 않은 때이니까요. 내막도 모르고 그걸 받아드는 심정이 고맙지만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연말에 몽니 부리듯 ‘내년에는 선교비 주시지 마셔요’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머쓱합니다. 사연 모르는 각시는 돈 모자라는 세월을 어찌 살아왔는지 미안할 따름이고, 그 덕분에 ‘철없는 전도사’ 칭호를 땄습니다. 다행히 선교비 사양한 해부터 교회 살림살이가 많이 불어났습니다. 예배당 지은 빚도 갚고, 사택도 큼직하게 새로 짓고, 대학원 공부까지 마쳤습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린 것이지요. 두 아들 낳아 기르면서 교회가 주는 밥도 배불리 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다른 교회에서 주는 선교비를 고사한 일은 참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한 삼 년 서울서 부목사로 일하다가 30대 후반에 신도시에 지하실을 세 얻어 개척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장마철에는 예배당에 물이 차서 한참을 퍼내야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 열악한 환경에 또 고마운 선배 목사님들이 선교비를 쥐여주셨습니다. 여간 요긴하고 고마운 일이 아닌데 그 철없는 몽니가 다시 발동해서 개척 이듬해부터 후원을 고사했습니다. 각시는 지금까지도 모르다마다요. 다른 손길을 통해 주시는 공급은 가뭄에 바가지로 물 퍼 주는 것이고, 하나님이 직접 주셔야 소나기라는 깨달음은 멀지 않게 체득되었습니다. 덕분에 각시가 그 과정의 가난을 함께 지켜 냈으니 좋은 소식 함께 들을 만하잖아요? 나는 목하 가을장마로 흠뻑 젖는 수요일에 그 감사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에서 개척교회 섬기기가 정말 훨씬 더 어려워진 형편이지만 정말 조심스럽게 제안할 말 있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은 하늘의 양식을 먹었더라는 사실을요. 그 양식은 사람의 손길 밖에서만 내리는 양식이라는 점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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