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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자 사모 수필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주려고
  • 기독교히럴드
  • 승인 2023.05.27 09:07
  • 호수 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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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순희 사모(성진성결교회)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들어오는 남편의 손에 무엇인가 들려있었다. “오늘이 당신과 결혼한 지 16주년 되는 날이야, 여보 축하해” 나의 손에 건네준 것은 싱그러운 장미꽃 16송이였다.

철없던 여고 시절 영등포의 구세군교회에서 나는 학생으로 남편은 지도교사로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마른 체구에 언제나 예의 바르고 냉철할 정도로 진지한 선생님이 지루하고 싫었다. 순서에 의하여 나는 선생님과 진로에 대하여 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대학 진학을 꿈꾸는 나에게 많은 문제가 있었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나의 공부를 도와주겠다며 본인이 공부했던 책이며 연구 자료들을 건네주었다.

그때 남편은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철도청에 사표를 내고 혼자 공부를 해서 당시의 예비고사에 좋은 성적이 나와서 그는 의대를 생각했지만, 목회자가 되려고 결심했었기에 모두 포기하고 신학대학에 들어가 신학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자신이 했던 공부 방법으로 나를 지도해 주었다. 본인이 인문계고등학교가 아닌 철도고등학교 출신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과정이 어려웠던 만큼 나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해 주며 부족한 영어와 수학을 지도해 주었다. 책을 둘러매고 그의 집을 찾으면 언제나 그는 하얀 컵에 따뜻한 우유를 타서 준비해 전해주는 자상한 사람이었지만 진도가 나가지 못하여 눈물이 나도록 꾸지람을 하는 무서움이 있어서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들게 했었다.

학력고사를 보고 내가 원하는 사회사업학과를 진학하여 합격했는데 아버지께서 안 계신 우리 집은 두 분의 오라버니께서 살림을 돕고 있었으나, 당시 오라버니의 공장이 부도가 나서 집안 형편이 어렵게 되어 등록금을 준비하지 못하고, 등록 마지막 날까지 등록금이 준비되지 못하여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슬픔에 빠져있을 때 그가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본인이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과 학교 측으로부터 받아온 융자 용지, 그리고 융자를 얻기 위해서 그가 살고 있던 동네 아저씨로부터 받아온 인감이 들려있었다.

그는 나의 손을 잡아끌고 은행으로 향하였다. 은행에 도착하였지만, 은행 마감 시간이 지나서 받아 줄 수가 없다고 하였으나, 그의 온갖 사정으로 허락을 얻어서 서류를 제출하였더니 이번에는 신입생에게는 융자해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학교에서 허락했으니 알아봐 달라고 거듭 부탁하자 마지못하여 은행직원이 학교에 연락한 후 특별히 해주라는 학교 측의 배려가 있었다는 것을 몇 번이나 강조하고 서류를 접수하여 주었다.

그 후 우리는 연인으로의 길을 시작하였으나, 우리 집안에서는 그가 신학생이라는 이유로 우리의 만남을 반대하기 시작했다. 특히 오라버니들의 반대는 나로 하여금 좌절을 경험하게 하였고 그를 만나면 늘 미안한 마음이 있어 나는 그에게 “좋은 여성이 많은데 왜 나를 선택하여 이 고생을 하는지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의 답변은 언제나 “성경 속의 야곱은 아내를 얻기 위하여 14년이나 기다렸다”라며 오히려 “대학에는 좋은 남자가 많으니 그들 중에서 배후자가 없다고 생각하면 자기에게로 와도 늦지 않다”라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학교 수업이 없고 시간이 나면 그토록 못마땅하게 여기며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우리 집에 와서 언제나 벽에 기대어 책을 읽으며, 나를 지켜주던 그는 아르바이트해서 용돈이 생기면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과일과 오라버니들의 선물을 잊지 않고 사 들고 와서 전해드리고 남은 돈은 나에게 건네주고 갔다.

그런 일이 반복되어 세월이 흐르면서 오라버니들의 마음이 그의 진실과 성실함에 녹아내리기 시작하였고 그는 이제 우리 가족의 일부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가 전담 전도사의 길을 가기 위하여 그가 대학원 1학년, 나는 대학 3학년을 마감하는 1995년 11월 2일 두 분의 오라버니보다 앞서 우리는 결혼을 해야 했다.

지금도 나는 잊을 수 없다. 부족하고 미진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도 자신이 결혼했다는 이유로 이 세상에 자기만 아내를 맞이한 사람처럼 기뻐하며 즐거워하던 모습이 19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간 지금도 나의 마음속에는 한 편의 영화처럼 재생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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