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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가 하고 싶은 말(2)알고리즘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3.29 19:57
  • 호수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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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기성 복된교회)

세상의 변화는 거의 파격적입니다. 그 변화는 100년 전에 살던 인류와 현생 인류가 전혀 다른 인종인 것으로 인정해야 겨우 파악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인공지능’은 ‘딥 러닝’과정을 통해 정보나 자료를 분석, 비교하는 차원을 넘어 스스로 사고하는 수준을 충분히 능가하고 있습니다. 최근 화제가 되는 '챗 GPT'는 모든 질문에 거의 교과서 수준의 답을 냅니다. 법원의 판결에도 가장 모범적인 판결문을 작성 할 수 있답니다. 의사보다 더 정확한 진단과 처방, 회계사 보다 더 정확한 계산이 가능합니다. 장난삼아 “너 양심도 있니?” 라고 물었더니 “저는 인공지능 언어 모델이기 때문에 양심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양심을 가지고 있다거나 없다는 개념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저는 프로그래밍 된 알고리즘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도구일 뿐이며, 인간과 달리 독립적인 판단력과 감정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심지어 성경을 기반으로 설교를 만들어 내는 일 까지 제법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냅니다. 몇 건을 시험 해 보니 영어와 달리 한글 기반의 자료들은 좀 궁색한 면이 없지 않지만 금세 완벽에 가까울 만큼 좋아 질 겁니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정보의 양은 엄청납니다. 그중에는 인공지능의 영향을 받는 게 많습니다. 일테면 요리에 관련된 정보를 검색한 사람을 다음날 다시 첫 화면에 뜨는 요리 관련 정보들을 접하게 됩니다. 내가 자주 접하는 정보 성향을 기막히게 파악해서 그에 관련된 정보들을 제공 해 주니까요. 정치적으로 여당, 혹은 야당 성향의 정보들을 보는 사람에게는 정확히 그런 성향을 정보들을 제공해 줍니다. 인공지능에 의해 노출된 정보에 따라 보고 듣기 때문에 야당은 야당 성향으로 여당은 여당 성향으로 굳어가는 것입니다. 이 나라의 진영 간 갈등은 바로 그 산물입니다. 야당의 입장에 서면 끊임없이 야당 우호적 정보들만 들을 수 있습니다. 결국 반대편은 파렴치한, 혹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등의 표현을 앞세운 비도덕적 무리가 됩니다. 그러다 야당이 여당으로 정권을 바꿔 쥐면 지금처럼 상대방의 약점을 향해 집중포화를 날립니다. 도무지 합의점을 찾을 수 없지요. 그 연장 선상에서 상대방을 멸문지화 시키고, 그게 모자라면 전쟁을 일으켜 상대를 아예 말살하려 드는 게 역사의 흔적입니다. 양심과 도덕, 상대방을 향해 갖는 최소한의 예의, 혹은 측은지심 같은 건 아예 말라버렸습니다. 인공지능을 통한 정보 습득의 편협함이 만든 결과일 것으로 추측하면 섬찟합니다.

인공지능의 조작대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듣기 거북한 반대편의 정보를 들어야 합니다. 누구나 정보의 출처를 다양화 하지 않으면 편향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롬10:17) 라는 성경의 가르침처럼 듣는 대로 생각이 결정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말하는 사람이 여, 야를 갈라 말하거든 귀를 닫아야 합니다. 예수 복음이 아니라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의 조작으로 한쪽 편 정보만 끊임없이 들은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에덴의 범죄가 ‘생각의 결여’ 때문이라는 해석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지칭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2:16-17) 하셨지요. 그런데 뱀이 찾아와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4-5) 했습니다. 거짓 정보지요. 이 두 가지 정보를 들은 아담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비교하고 성찰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의 게으름으로 그 과정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 다만 들은 순서를 따라 더 낮은 가치이지만 기억에 선명한 뱀의 말을 따라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우리 인간 내면의 본성이 그러하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모름지기 치열하고 사고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그 과정이 버겁습니다. 그래서 낮은 차원의 가치들이 확정된 억양으로 강조되면 따라가는 현상을 보입니다. 스스로 최고의 민족으로 자부하는 독일, 아리안족들이 히틀러의 낮지만 강력한 악다구니를 반복해서 들은 결과 세계사에 길이 남을 죄악상을 만들어 냅니다.

최근 전 광0 씨는 ‘하나님 나하고 바꾸자’라고 설교합니다. 청중은 열렬히 아멘합니다. 자신의 27세 아들을 독생자로 지칭하여 자신의 후계자로 공언합니다. 아무도 아니라 말하지 못합니다. 왜냐면 그는 우리 정치 여정에서 보수 진영의 가치를 확정된 진리로 악을 써서 소리 지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하기에 게으른 사람들은 귀에 들리는 대로 추종합니다. 복잡한 생각이 귀찮고 적당한 분노를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분노의 표출 통로를 열어 주는 역할을 하는 그의 논지에 생각 없이 찬동하기 때문입니다. 그자가 주창하는 보수적 정치 논리는 전혀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게으른 사람들은 그의 확정된 악다구니를 게으르게 받아들인 결과로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정치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가치를 초월하는 절대 가치입니다. 깊은 숙고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그 과정이 귀찮은 사람들은 최고 가치인 복음의 이름을 빌려 낮은 차원의 정치적 편향을 정당화 하는 악다구니에 휩쓸리는 현상입니다. 들은 대로 생각하니까요.

우리의 귀는 세상 정치의 여, 야 편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 사랑의 복음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 누구랄 것 없이 모두 예수님 편에 서면 나도 살고 상대도 살리는 인생 되는 까닭입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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