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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역 전문가 최현준 목사의 ‘다음 세대’ 논단청년, 예수와 함께 답을 찾다 ④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3.29 19:42
  • 호수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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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준 목사(기성 하늘동산교회)

청춘, 청년을 만나다

7. 하나님은 완전한 분이시다. 다만 우리의 연약함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할 일은 성수대교처럼, 삼풍백화점처럼 징후를 무시하다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잘 살려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리의 신앙의 기초부터 다시 한번 점검하여 더 견고하며 올바른 교회의 역사를 세워가는 것이다. 신앙의 본질을 점검하고 더 바르고 견고하게 세워가는 것이다. 혹시 아는가? 우리의 환골탈태가 하나님의 큰 그림이실지.

불변의 고목과 변화하는 나목(枯木-말라죽은 나무, 裸木-잎이 떨어져 앙상한 나무)

1. 불편해서 변화하는 바닷가재

바닷가재의 일생은 불편함으로 말미암은 성장의 연속이다. 이 바닷가재는 갑옷처럼 단단한 껍데기로 자신을 보호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신을 보호해주는 껍데기에 속살이 꽉 차면서 불편한 시간이 도래한다. 이때 바닷가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아갈 것인지, 위험을 무릅쓰고 더 크고 강한 껍데기를 만들 것인지. 더 크고 강한 껍데기를 만들기로 선택을 한다면 우선 다른 천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은거지를 마련한다. 그 속에서 목숨을 걸고 자신의 껍데기를 벗는다. 그리고 자신의 흐물흐물한 살에서 새로운 껍데기가 돋아나 더 크고 강한 껍데기가 자리 잡기까지 기다린다. 바닷가재는 이 과정을 평생 반복하며 성장한다.

2. 편안함에 젖어버려 변화를 멈춘 교회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주신 복으로 인해 어느 순간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을 벗어났다. 이제는 신앙으로 인해 겪는 고통이나 불편함이 거의 사라진 시대가 되었다. 이 사회의 기득권에 진입했으며 고지론으로 인해 다양한 기독교인들이 각계각층의 지도자가 되었다. 평생을 성장해야 하는 바닷가재처럼 교회는 끊임없이 말씀을 고민하고 사회를 고민하고 사람을 고민하고, 죄와 악을 고민해야 한다. 노예제도를 없애고, 인종차별 철폐에 앞장서고, 첩 제도 폐지에 앞장서고 남녀차별금지에 앞장서서 여자들도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사회적으로 외면받던 한센병 환자들에게 다가갔던 교회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사람들의 칭찬에 만족하였다. 만족함은 곧 편안함을 불러왔고, 편안함에 젖어버려 성숙과 변화를 멈추었다. 나는 며칠 전 영화 기생충을 처음으로 제대로 감상하였다.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보는 내내 메스꺼움을 참을 수 없었다. 기생충처럼 사는 송강호씨의 가족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외면하고, 무시했던 나 스스로에 대한 욕지기를 참을 수 없었다. 왜 나는 그들을 보면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을까? 왜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아무런 불편함 없이 바라보고 있었을까? 이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괴로워하는 그들의 고통을 듣지 못했을까? 왜 우리는 자족하며 멈추었을까? ‘너’를 위해 끝없는 불만족을 통해 나뿐만 아니라 서로의 짐을 함께 짊어지는 사회를 이룩하지 못했을까?

3. 변화된 삶과 변화를 싫어하는 우리

최근 방송가에서는 관찰예능이 유행이다. 관찰예능은 누군가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감탄도 하고 답답함에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관찰예능은 한민족 고유의 오지랖을 만족시켜 주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방송출연자들이 유난히 문제가 많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가 정도와 방향만 다를 뿐 비슷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 가장 흔한 예로 가정의 냉장고를 살펴보면 기원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냉동식품들이 있다. 도대체 저것이 몇 년 전에 들어가 있던 생선인지, 먹어도 탈이 없는 것은 확실한지 불분명한 것들이 넘쳐난다. 우리 부모님들은 현재의 삶이 풍족한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이 불안하기에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릴 것을 알면서도 냉장고에 꽉 채워 넣는다. 우리 모두 삶은 복을 받아 변화했지만, 삶의 태도는 변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삶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데 삶이 복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그토록 간구하며 복을 받을 이유가 있을까?

4. 고난은 왜 복일까?

고난은 나로 하여금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민하면서 내가 변화한다. 고난을 겪으면서 내가 성장한다. 하나님은 한국교회가 더 성장하기를 원하신다. 모세오경의 권선징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혜서의 지혜를 얻기를 원하신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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