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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연애편지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3.29 16:31
  • 호수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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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영 (본지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작가가 책 앞에 쓴 그림 같은 글ㅡ “꽃이 일어서고, 빛이 일어서고, 별이 일어서는 봄! 그리운 것들이 일어서는 숨소리 들리는 3월! 한 섬에서 마악 일어선 산들바람 선생님께 건너갑니다.” <담장의 말>이란 책은 그렇게 내게로 왔다. 세상의 도리를 아는 깊은 시선으로 오래전 것들을 응시하니 거기 삶의 자락 한 겹이 살짝 열리는 듯 했고 봄의 아름다움과 비의 적막을 지녔으며 얼마 전 다녀온 모로코의 푸르른 하늘빛을 생각하게 했다. 그곳의 하늘은 원시처럼 푸르르고 맑았는데..... 마악 일어선 산들바람이지만 창세 전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시작된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는 평사리에서 생면 부지의 한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대한다. 어찌나 거룩하던지 바로 밥을 먹을 수 없어서 빨간 맨드라미 핀 장독대 앞의 밥상을 찍은 후 밥을 먹는다. 그러니 그 순간 그의 기도는 사진일 것이다. 벽에 걸린 조리, 구수한 가을 햇살을 받고 있던 조리 사진을 찍으려고 빛이 좀 더 차오르기를 기다리는데 가슴이 두근거린다. 작가는 자신이 도둑이어서 그렇게 가슴이 뛴다고.... 피사체를 훔치는 일이고 보이지 않는 미를 훔치고 보이는 순간을 훔치고 심연을 훔치고 은유를 훔치고 그렇게 세계를 훔쳐 빛과 이미지의 동화를 만드는 도둑이라고 자신을 증언한다. 


  작가는 와온의 바다 햇빛을 수집하는 섬달천 마을 뒷간 담벼락에서 프랑스의 산속 구릉 위에 새겨진 르코르뷔지에가 만든 롱샹성당을 발견한다. 아주 오래된 수도원의 빛(햇살)과 투박한 어부가 만든 뒷간으로 스미는 햇살(빛)을 병치할 수 있는 놀라운 상상력은 얼마나 기하학적이며 유쾌한가. 아, 팔은 얼마나 길어야 그 둘을 품에 안을 수 있을까,  
 전라남도 순천의 와온해변은 나도 잘 아는 해변이다. 여수에 살던, 이제는 세상에 없는 내 언니가 무척 좋아하던 곳, 그녀가 생전에 그랬다. “여기 황혼이 그렇게 아름답단다.” 언니가 살아 있을 때 우린 함께 와온을 두 번이나 찾아갔지만, 그녀가 바라본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는 없었다. 대신 나는 와온해변의 주변에서 도깨비 가지꽃의 청순함에 매료되었었지. 더군다나 꽃과 이파리 아래 무수히 지니고 있던 그 수많은 가시라니... 와온의 황혼은 어제도 그제도 그리고 앞으로도 수없이 다가올 풍경이지만 어느 순간 길을 내어 언니에게 스며들었고 이제 그 풍경은 온전히 언니만의 것이 되어버린지도 모른다. 오늘도 내 딸과 나는 문득 언니를 이야기하다 둘 다 눈물을 흘렸다. 왜 언니는 그렇게 아팠고 일찍 세상을 떠났을까, 언젠가 우리가 천국에서 만날 때 나는 언니와 와온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제 이 저미는 마음 까지 함께 품은 와온의 풍경을, 사실 무수한 풍경을 보면서도 나는 풍경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른다. 아니 갈수록 풍경이 무엇인지 모르겠더라. 풍경을 볼 때면 오히려 풍경은 사라지고 풍경이 보이지 않을 때 오히려 생각 속에서 그리워지는 풍경도 있으니……. 풍경은 마치 신기루 같은 것인가, 


 그래서 작가의 풍경 보는 법을 응시하게 된다. 심미적인 것은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불협화음으로부터 온다는 것, 불협화음에 내재한 정신은 끊임없이 아름다움의 껍질을 파괴하면서 나오려고 한다는 것, 그는 한참 아름다운 수국을 묘사하다가 바로 곁의 마른 넝쿨 줄기에 주목한다. 마침내 중력과 중력 사이에 길을 내는 그들을, 그리고 낯익은 것을 조금 낯설게 바라보기, 그러면 그곳에 연민이나 동경, 탄식이나 두려움이 있을 거라고, 와온, 쓸쓸함의 극한점들이 찍혀 온유해진 물빛을 사뿐히 걷게 될 거라고, 


   표준 국어 대사전에 연애는 ‘성적인 매력에 이끌려 서로 좋아하여 사귐’이라고 해설되어 있다. 다행히 고려대 한국어 대사전의 해설은 좀 더 낫다. ‘상대방을 서로 애틋하게 사랑하여 사귐’ 애틋함이 있으니 적용 가능성이 더 커진다. 사하라 사막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사막인들은 평생 초록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탑에는 거의 모두 선명한 초록빛이 있다. 글은 외로움의 토로다. 응시해 달라는 프로포즈. 그래서 글은 그리움의 언어다. 풍경과 사유에 대한, 수많은 세월과 시절, 그리고 적막과 고요에 대한 응시.  
 민병일의 <담장의 말>역시 삶을 향한 연애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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