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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역 전문가 최현준 목사의 ‘다음 세대’ 논단청년, 예수와 함께 답을 찾다(2)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3.15 19:21
  • 호수 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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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준 목사(기성 하늘동산교회)

청춘, 청년을 만나다

6. 그것이 늙은이가 꿈을 꿀 것이라는 예언이자 명령이다.

필자는 신앙의 다양한 고민들을 기록하고 나누고자 한다. 더불어 이 책을 통해 20세기의 청춘들과 21세기 청년들을 위해 이해와 화해의 다리를 놓을 것이다. 이 글을 통해 20세기의 청춘들의 아픔과 삶의 지혜와 21세기 청년들의 아픔과 개성이 교류되어 서로를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로 인도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꿈꿔본다.

“尙, 아직도, 아니 오히려”

1. 임진왜란은 삼박자가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한 참극이었다. 첫째, 무능한 임금이 있었으며 둘째, 바른 다스림의 정치가 아닌 허울뿐인 정치와 셋째, 조선에서 개발하여 일본에 전수한 순은 제련 방법인 단천연은법이다. 일본에 즐비하였던 은광은 호황을 맞이하며 경제가 발전하고 발전한 경제력을 발판으로 조총을 비롯한 서양의 최신문물을 받아들여 비약적으로 강력해진 일본군에 의해 임진왜란이라는 비극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과 전국각지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의병들의 희생으로 일본군에게 점령되지 않을 수 있었다.

2. 불멸의 이순신 장군이 일본해군을 이길 수 있었던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노군이다. 사방이 막혀있고, 포연으로 실내가 뿌옇게 변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와중에도 일본 함선과 충돌하며 발생한 그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손이 찢어져라 묵묵히 노를 저었던 노군들이 있었다.

3. 선조의 노여움으로 이순신장군이 백의종군을 하는 사이 그 많던 배를 잃어버리고 도망친 겁쟁이 12척의 배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순신장군을 복직시켰지만 너무 적은 수의 수군과 배만 남았기에 육군과 통합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러나 이순신장군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상소문을 올린다.

4. 한국사 최고의 강사 중 한 분인 최태성씨는 그 상소문 중 ‘尙’이라는 한자를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순신장군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선조의 마음을 돌리고 최후의 결전을 허락받기 위해 12척의 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하던 장군은 12척의 배를 ‘尙’이라고 말한다. 많은 이들이 이 한자를 ‘아직’으로 해석해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최태성씨는 ‘오히려’로 해석하여 “신에게는 오히려 12척이나 되는 배가 있습니다”라고 해석한다.

5. 성경에서도 “아직”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던 적이 있다. 바로 사사기 7장 4절이다.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수십만 명의 미디안 군대와 싸울 용사를 모으는데 32,000명 중 이만 이천을 돌려보내고 겨우 만 명만 남았다. 그런데도 “아직도” 많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처음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300명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셨다.

6. 우리는 한국교회의 위기와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기는 아니다. 하나님께 필요한 용사는 오직 300 용사였다. 말라기 2장 9절을 보니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다고 고발한다. 말라기서에 의하면 대다수 백성이 치우쳐 죄를 짓고 하나님을 조롱하고 업신여긴다. 그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하나님은 “특별한 소유”로 삼겠다고 말씀하셨다.

7. 본래 소유(세굴라)란 “가장 중요한 소유물”을 뜻한다. 그런데 “특별한”이라는 수식어를 통해 하나님께 더욱 특별한 존재가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 사람이 재배하는 블루베리와 야생의 힘겨운 생존을 거친 블루베리는 그 맛과 약효에서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평화의 시대를 거친 성령의 9가지 열매와 험악하며 험난한 시간을 통과한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8. “하나님 지금 이 시대에는 아직, 아니 오히려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고자 하는 자들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제가, 그리고 나아가 우리가 그 특별한 소유가 되겠습니다. 타는듯한 목마름과 피까지 얼어붙는 듯한 추위 속에서도, 나의 신앙의 뿌리까지 뽑아 올리려는 태풍 속에서 끝까지 반석이신 예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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