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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無의 삶을 산 김용은 목사(11)김용은 목사의 생애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1.18 16:43
  • 호수 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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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은 목사

대부분 농민들은 저항할 의지가 없었고 혹 있어도 행동하기가 어려웠다. 김용은 전도사는 어려운 상황을 인식하고 1949년 12월 농한기에 농민들에게 북한 실정을 알리기 위해서 북한의 공산당을 경험한 임동선 전도사와 함께 소성면, 입암면, 성내면에 있는 3개면에 다니면서 사상 강연과 전도 집회를 하였다.

임동선 전도사는 해방 후 남한의 정치지도자들의 부정부패를 보고 정치지도자들에게 항의하다가 공산당이라는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다가 풀려났다. 임동선은 공산주의에 대하여 알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뜻을 같이한 몇 사람과 월북을 했다. 그들이 남한의 유능한 청년들이라고 소개를 받은 김일성은 임동선 일행을 군정 대학에 입학을 시켜서 사상 교육을 하였다.

그런데 학생들이 날마다 이승만, 김구 선생 타도를 밤낮으로 하는 것을 보고 잘못되었다고 항의를 했다. 학교에선 임동선을 남한 스파이라고 죄명을 씌워 사형을 선고했다. 임동선이 밤중에 기도하다가 감옥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다음 날 하나님의 역사로 김일성의 측근 독립운동가인 박성환의 간청으로 김일성을 만나게 된다.

박성환은 김일성에게 이 청년은 유능한 청년이므로 함께 일하면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임동선이 이곳에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김일성이 임동선 동지! 앞으로 무엇을 하겠는가? 라고 묻자 순간적으로 서울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배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김일성은 좋은 생각이라며 남한까지 갈 수 있는 친필을 주었다. 

그러나 남한에 온 임동선은 곧바로 서울신학교에 입학하고 전도사로 활동하였다. 김용은 전도사는 임동선 전도사를 초청하였다. 임동선 전도사와 함께 3개 면에서 전도 집회를 하면서 농민들에게 북한의 거짓을 폭로하므로 좌익 사상을 공격하였다. 김 전도사는 임동선 전도사와 함께 정읍으로 내려가 정읍 소성면과 입암면, 고창 성내면의 학교를 빌려 전도집회 겸 반공 강연에 나섰다.

“우리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 나라를 일으키고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힘을 키우는 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면해야 합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두 사람의 웅변은 농촌 젊은이들 가슴에 불을 지폈다. 김용은 전도사의 이러한 활동 상황을 알고 있는 공산당들은 그에 대하여 호의적일 수 없었다.

1950년 4월 신학교 기도의 불씨

“김용은 전도사님, 이제 더 정읍에 머물면 안 되겠습니다. 이러다 우리 돌에 맞아 죽겠습니다. 일단 학교로 돌아가서 졸업을 하고 농촌계몽운동을 더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서울로 올라온 김 전도사는 뭔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신앙과 정치가 그의 머릿속에 명확한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은 채 어제의 생각과 오늘의 생각이 달랐다.

김 전도사는 졸업하기 전에 성령 충만을 원했다. 농촌 계몽가가 되어야 할 것인지, 사회사업가가 될 것인지, 전담 목회만 할 것인지 마음의 정리가 안 되었다. 또한 무엇을 하든 만만치 않았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모든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김 전도사는 40일 작정 기도를 했다. 기숙사에 있는 동기동창에게 권면하자 대여섯 명이 동참했다. 그때가 1950년 4월 1일이었다.

그들이 기도 전사가 되어 새벽 경건회 후에 무릎을 꿇자 1,2학년 학생들이 참여했고 나중에는 거의 전교생이 기도회에 참석했다. 교수들도 수업을 중단한 채 학생들과 함께했다. 성령의 불길이 학교 전체에 타올랐고 합심 기도로 눈물바다를 이뤘다. 죄의 자복이 이어졌다. 마치 1907년 평양 대 부흥회 같은 성령의 임재였고, 1921년 이명직 목사의 죄의 고백과 성령충만 기도회가 재현된 것 같았다.

용은은 40일 작정 기도를 통해 성령 체험을 했다. 그리고 그 작정 기도 이후 목회 외에는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다. 오직 목회자로 만족했다. “그 때 저는 사람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물었죠. 무슨 업적을 이루겠다든가 하는 욕심 같은 것에 휩쓸리며 살고 싶지 않았어요. 그저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성도들과 교회만을 섬기고 봉사하며 살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용은은 40일 작정 기도를 통해 정치인의 꿈을 접고 온전히 사역자로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기로 했다. 졸업을 앞두고 첫 사역지가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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