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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대책과 차별금지법반대 (68)동성애에 대한 회개를 위한 설교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1.18 16:00
  • 호수 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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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2:49 내가 땅에 불을 던지러 왔다. 그런데 이미 불이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겠는가?

소기천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예수말씀연구소 소장 )

목사가 왜 정치에 참견하느냐고 말하는 딱한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 교회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동성애를 반대하고 이것을 소수자로 옹호하는 평등법에 반대한다고 자주 듣는 말이다. 그러나 정치 현안에 가만히 있다가 대낮에 코가 베이는 사태가 일어난다. 국회에 입법 공지가 있는데. 앱을 깔아 놓고 수시로 들어가서 잘못된 법안이 발의되고 있는지,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니 수시로 감시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말기에 일어난 일이지만, 한·아랍 법안과 동성혼 결혼법에 국회에 발의되어 심각한 반대 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한국과 아랍 사이의 무슨 대단한 법안인 것처럼 보이지만, 살펴보면 국민의 혈세로 특정 종교인 이슬람을 지원하는 법안이다. 또한, 같은 성씨끼리 결혼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합법화하려는 악법이다.

이런 일로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전화하여 항의하고, 다수 국민을 역차별하는 법안이기 때문에 당장 철회되도록 힘을 쏟았다. 이러한 악법이 통과되면 다수 국민의 정서나 도덕관에 치명상을 주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가정의 질서가 무너진다. 그래서 어떤 법안이 국회에 계류되면, 흔히 그 법안 자체만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후 문맥과 주어진 상황 그리고 특정 단체를 옹호하는 악법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전후 문맥과 상황에 대한 내러티브 연속성에서 이해할 수 있다. Q 12:49-53의 위치는 누가의 순서에 의하면 Q 12:46 뒤에 있고 Q 12:[[54-55]], 58전에 있으며, 마태의 순서에 의하면 Q 12:9(마 10:33) 뒤에 있고 Q 14:26(마 10:37) 전에 있다.

앞의 구절에서 신실하고 지혜로운 종이 갑자기 돌변하여 주인의 소유를 가로채고 먹기를 탐하고 술주정뱅이와 개망나니로 전락해버리는 상황은 이 구절에서 평화의 왕으로 오신 것으로 누구나 알고 있던 예수님께서 “내가 땅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느냐? 나는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라는 선언으로 역설적으로 연결된다.

이 구절은 너무나도 역설적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지니는 가치전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 결코 역설적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 전후 문맥의 서사성 속에서 분명한 상호 작용을 하고 있다. Q 12:49의 ‘땅에 불을 던지러 왔다’라는 구절은 누가의 특수자료에 속하는 말씀이라. 마태복음과 공통되는 구절이 아니기에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불을 던지러 왔다’라는 구절과 ‘검을 주러 왔다’라는 구절은 상호 연결점이 있다. 누가가 보존한 자료가 마태 자료와의 공통점이 없지만, 불과 검의 표상이 유사하기에 충분히 예수님의 말씀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내가 땅에 불을 던지러 왔다. 그런데 이미 불이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겠는가?”라고 복원되었다.

도마복음서 로기온 10에는 예수님의 말씀에 언급된 ‘땅’ 대신에 ‘세상’이란 단어가 나온다. 예수님의 말씀이 땅에 국한된 상황에 중점을 두고 있는 반면에, 도마복음서는 세상과 우주로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오신 것은 심판 주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께서 이사야와 스가랴의 예언대로 ‘평화의 왕’으로 오신 것에 관해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 턱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어린양의 이미지로 오신 분이시다. 심지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로마 병정을 위하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하시면서 ‘우리를 위하여’ 그 모진 고통을 당하시고 그 아픔을 모두 참으셨다. 

그야말로 평화의 왕으로 오신 분이 우리 주님이시다. 골고다에 많은 순례객이 부활절도 아닌데 방문한 적이 또 있었던가? 이 많은 사람이 전 세계에서 몰려와서 이스라엘의 다른 성지는 다 돌아보지 못해도 골고다만은 반드시 들리기 때문이다. 이슬람은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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