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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서(82)해방 이전 한국성결교회의 여성운동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11.30 15:33
  • 호수 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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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운 박사 ( 본지 논설위원, 전 성결대 총장, 교수 )

I. 여는 글

철저한 가부장적 위계적이고, 남성중심의 신분사회로서 유교적 가치관과 봉건적 체제를 유지하던 한말(韓末) 당시에 조선사회 여성들의 기독교 수용은 여성에 대한 근대적 의식을 발아(發芽)시킬 뿐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였다. 조선 여성들에게 기독교는 성과 결혼에 관련된 새로운 질서를 제시함은 물론 여성의 개별 인격적 존재에 대하여도 새로운 이해 차원을 보임으로써 여성해방의 길을 보였다.

기독교는 가부장제적 유교의 여성관과 남녀 이해관계의 변화를 가져오게 했고, 성과 결혼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촉진시켰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생활공간을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문제와 민족적 과제에 대해 참여와 책임의식을 갖게 하는 영역의 확대를 갖게 했다. 따라서 기독교는 일부일처주의, 자유결혼, 개가 허용, 남녀동석의 필요성 인정 등 기존의 유교주의 가족 제도와 질서를 붕괴시키면서 도전하였다.

이처럼 초기 한국교회 역사에 나타난 바, 기독교는 그 출발부터 선교의 방편을 삼았던 교육활동을 통해 여성교육에 이바지했다. 그 때까지 여성의 존재는 가내 노동의 도구나 남자아이를 낳는 기계 이상의 인정을 받지 못하던 때에 기독교의 이상과 같은 성서적 남녀 평등사상과 자유론은 한국 여성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지위에 대한 천부적 평등론을 알게 하였고 남녀 동등에 대해서 다른 나라 여성들의 평등한 지위와도 비교할 수 있게 하였다.

모든 면에 있어서 여성은 남성에 비하여 열등하다고 체념하고 있던 때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여성교육기관을 세워 본격적인 여성해방운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여기에 여성들이 호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여성은 지적인 면에서도 남성과 비교할 때 뒤지지 않고 훌륭한 자질을 보였다. 한 실례로 교파를 초 월하여 수많은 전도부인(Bible women)들이 남자 교역자에 못지않게 초기 한국교회 여성지도자로서 맹활약하여 한국교회의 기초석을 쌓았다.

그러나 지나간 과거 역사에 있어서 한국교회 성장과 발전에 끼친 여성운동의 영향은 과소평가되거나, 소홀히 여겨 왔다. 상대적으로 성결교에 비해 장로교와 감리교에서는 과거 여성운동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이해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지만, 성결교단은 이에 미치지 않고 있다. 

본고(『성결대 교수논문집』, 27집, 1998년에 발표됨)에서는 해방이전 한국성결교회의 여성 활동을 부인회전국연합회를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성결교회 여성운동이 성결교회 발전에 끼친 영향을 규명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두가지 목적을 가지고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한국성결교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 남성 편향적으로 기록된 성결교회 역사정리에 여성운동의 공헌을 규명함으로서 성적 차별이 없는 총체적인 역사 서술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 둘째, 초기 한국성결교회 부인회연합회의 활동과 그 역할을 살펴봄으로써 초기 한국성결교회 형성과 성장에 있어서 한국성결교회 여성들이 끼친 공헌과 한계를 규명하여 한국성결교회 여성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Ⅱ. 한국성결교회의 여성운동의 역사적 배경: 19세기 성결운동과 동양선교회

한국성결교회는 동양선교회를 이어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사중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세워졌고, 신학적 입장에 있어서는 칼빈주의와는 대조적인 웨슬리안 알미니안적 보수적 전통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성결교회의 역사적 근원이 되는 19세기 성결운동은 우리가 피상적으로 생각하듯 오늘과 같은 보수적인 입장이 아닌 진보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초기성결교회 여교역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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