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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서(81)해방 이전 한국성결교회의 만주 선교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11.23 11:44
  • 호수 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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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운 박사 ( 본지 논설위원, 전 성결대 총장, 교수 )

그것은 아래 도표 8의 통계와 같이 1932년 전에 용정 지교회 까지 합쳐도 4교회였던 것이 자치 선언을 한 1932년에 들어오면서 사료(史料)로 나타난 곳만 해도 1934년까지 14교회와 10곳 이상 기도처가 새로 신설되는 놀라운 숫적 증가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자치 선언을 통한 자립 선교는 만주 선교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쳐 재만교회들로 하여금 자치적이고, 자기 의존적인 적극적인 교회 설립과 성장을 가져오도록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매년 선교주일을 부활절로 정해 선교 의식을 고취시켰고, 선교주일에 나온 선교헌금으로 만주 선교에 경제적 지원을 하였다. 또한 자치 선언 이후 선교열이 크게 일어나 경성성서학원의 3년 학기제가 6년 학기제로 바뀌어져 일년 중에 봄과 가을에 공부하고, 나머지 기간인 여름과 겨울은 임지에 나가서 전도하여 교회를 개척하게 하였다.

닫는 글

지금까지 살펴본 바, 재만 한인교회의 형성기인 1920년대에 들어와 장로교와 감리교는 본격적인 만주 선교를 전개하였다. 재만 성결교회는 장·감 보다 훨씬 늦은 1920년대 중반인 1925년이 되어서야 만주 선교 대열에 참여하였다.

1930년에 들어와서 전만(全滿)을 둘로 나누어 동만(東滿)은 동만 순회사 이정원이, 남만(南滿)은 남만 순회사 김광준이 맡아 교회 26곳, 기도소 10곳 이상, 포교자 37명에 교인 약 2,000명 이상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 동안 20년간 재만 성결교회가 가진 만주 선교의 한계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재만 성결교회도 장·감처럼 외지 선교부인 동양선교회가 잇었지만, 동양선교회는 장·감과 같이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하였고, 또한 결과적으로 영·미 선교사들의 치외법권적인 입장을 장·감과 같이 효과적으로 재만 한인사회의 선교에 활용하지 못했다.

둘째로, 재만 성결교회는 동양선교회 창립 정신에 따라 간접 전도 매체를 사용하는 것보다 직접 복음전도에 주력하여 사회구원, 민족구원보다 개인 영혼구원에 치중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당시의 재만 한인사회가 가진 반봉건, 반제국주의, 항일 민족적인 성향에 부응하지 못하는 소극성을 보였다.

셋째, 재만 성결교회는 장·감 위주의 선교 구역이 할당된 뒤, 만주 선교에 동참했으나, 1932년 자치 선언을 통해 자치 내에서 그 활로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1932년 자치 선언이 경제적인 자립을 얻지 못한 일시적인 정치적 자치운동으로 끝나고, 1936년 성결교회 총회가 이사회에 의해 해산되어 연회로 다시 복고되자 만주 선교도 국내에서처럼 크게 속도가 둔화되었다.

그리고 1936년 성결교 총회 분규 사건이 일어나 ‘하나님의 교회' 교단이 11월에 창립되자, 장막 순회전도대 대장인 정남수 목사 등 유능한 신진 개혁 주도세력이 성결교회에서 이탈됨으로 인해 선교 열기는 식어지게 되고, 결국 답보 상태에 머물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한계에 앞서서 재만 성결교회의 만주 선교는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첫째, 무엇보다도 만주 선교사업은 한국성결교회의 최초의 해외 선교 사업으로, 선교를 우선하고 지향하는 성결교회의 본래적인 교단 특성을 회복시켜 주고 제자리 매김을 하는 귀중한 초석이 되게 하였다.

둘째, 성결교회의 재만 한인사회에서의 직접 복음전도는 당시 국내 뿐 아니라 만주에서도 장·감의 사회 개혁과 문맹퇴치, 민족운동과 결부되어 진행되었던 민족 구원에 있어 지역적 의의에 치중되는 복음의 변질을 막아 주는 것으로, 순복음(사중복음)의 유일한 보루로서 재만 성결교회가 재만 한인사회에 뿌리내리게 하였다.

셋째, 특히 장·감과 달리 재만 성결교회는 그 처음 시작에 있어서 외국선교부 동양선교회의 주도와 파송으로 세워지지 않고, 한국인의 주도 그것도 평신도 성결교인의 교회 개척으로 인해 자생된 점이 장·감과 매우 다른 인상적인 선교의 출발을 보여 주었고, 이것은 선교의 주체로서 토착적인 의식 확립과 신앙의 연결에 있어서 한국교회에 커다란 의미를 던져주는 일이 되었다.

넷째, 한국성결교회가 1925년에 용정에 첫 해외 선교사를 파송하여 장·감에 비해 짧은 기간 동안 만주선교에서 큰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은 성결교회가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리적 특성이 선교 우선, 선교 지향성임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성결교회가 해야 할 본연적이며, 당위적인 우선 과제가 세계선교임을 제시하여 주며, 특히 북방선교(동북 아시아 공산권 선교)에 대한 새로운 방향과 역할 감당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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