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4.2.23 금 16:59
상단여백
HOME 기고/오피니언 특별기고
존 웨슬리의 교회 안의 작은교회 선교운동(23)제5장 "교회 안의 작은 교회" 에 관한 역사적 고찰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10.26 15:03
  • 호수 566
  • 댓글 2
          이재완 목사(영암벧엘교회)

특히 광야의 교부들은 고요히 하나님을 독대하면 할수록 자기에게는 허물과 죄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생각은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이 세상 앞에서 저들을 낮아지게 함으로 참된 구원의 길을 걸어가게 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먼저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개인의 재물들을 모두 나누어줌으로써 자신들이 의지할 수 있고 기득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근원들을 제거했다.

이들의 생활은 극도로 소박했다. 직접 손으로 바구니, 명석 등을 짜면서 기도와 시편을 낭송했고, 오직 성경 그리고 존경받는 은자들의 지혜의 말씀과 건덕이 되는 일화들을 서로 나눌 뿐이었다. 결국 광야의 교부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셨던 삶을 통하여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려고 했고 이를 통해 하나님에게는 영광이 되고 자신들에게는 참된 구원과 성화를 이루고자 했으며 이웃을 위한 삶으로 역사에 참여함으로써 영성의 길을 걸어갔다.

둘째, 동방교회 초기에 영성의 핵을 이루었던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클레멘트(Clement)와 오리겐(Origen)등은 ‘하나님과의 연합’을 위해 특히 금욕 생활과 이성의 역할을 강조했다. 클레멘트는 말씀을 조명자로 부르면서, 또한 이러한 삶은 내적으로는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외적으로는 그의 이웃들을 신자와 비신자를 구별없이 사랑하며 참되고 아름다운 삶의 길로 교훈하게 된다고 했다.

오리겐은 영성 생활의 도구로 명상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으며 활동적인 삶과 명상적인 삶을 구별하고 있다. 그는 자기 제자들과 함께 금욕주의적인 생활을 하였으며 하나님과의 대화, 예언 그리고 다른 영적 은사들은 오직 금욕과 연단에 의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클레멘트와 오리겐은 영성의 형태에서 눈의 활동에 초점을 맞춘 상념적(Kathaphatic)이며 사변적(speculative)인 형태를 취하였다.

또한 갑바도기아의 세 교부였던 나지안주스의 성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 카이사리아의 바질(Basil of Caesarea), 그리고 니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는 ‘하나님과의 연합’을 위하여 금욕적인 삶과 은둔 생활 그리고 완전한 고독과 사색, 예수의 기도, 성상(Icon), 성례와 성만찬 등을 중요한 영성의 도구로 사용하였다.

셋째, 서방교회 영성은 일반적으로 생생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상념적(Kathaphatic)이며 정의적(affective)인 형태로서 ‘하나님을 보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이것은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표를 하나님을 보는 것(visio Dei)으로 알고 있었던 것에 기인한다. 서방교회 영성은 어거스틴(St. Augustine)을 주축으로 갈래가 잡혔다.

어거스틴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데 육체적 쾌락 특히 성이 가장 큰 방해물이 되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금욕 훈련을 강조했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믿음을 무시하지 않았다. 믿음은 다만 인간이 의롭게 되는 일의 한 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본질은 조직적이거나 법적인 것이 아니다.

바울에게서와 같이 어거스틴에서도 가장 중요한 ‘경건’과 영성은 믿음이라기보다는 사랑이었다. 어거스틴의 영성은 도구적 이미지로 자기 회의, 신중함, 금욕, 순종, 겸허 등을 통해 그리스도와 같이 자기를 하나님께 봉헌하려는 구체적 진리의 추구를 찾아볼 수 있다. 중세시대의 영성은 수도원에서 그 출발점을 찾아볼 수 있다.

수도원은 초대교회 말기 동방의 금욕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고 나타난 수도단체로서 수도원 운동은 자기정화와 철저한 자기부정으로 부패한 그 시대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어 넣었고 종교로 하여금 형태만 남은 빈껍데기가 아닌 살아 숨쉬는 산 영이 되도록 생명을 불어 넣었다. 그러면 중세교회 안에서 수도원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영성 운동의 특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경건이었다.

따라서 수도원 운동의 초기 특징은 철저한 고행을 통한 육체적, 현세적 욕망의 절제와 극복을 목표로 하였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2
전체보기
  • 장여옥 2022-10-29 09:46:22

    동방교회의 영성을 촉진하고 결실을 맺게했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오리겐, 서방교회 영성의 축이었던 어거스틴의 교리를 통해 종교적 체험과 성결한 생활을 강조했던 존 웨슬리의 신앙운동을 고찰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이재완 목사님의 글을 통해 오늘도 우리에게 성결한 신앙운동이 이어지고 있네요.   삭제

    • 정경란 2022-10-29 07:04:16

      중세교회는 수도원을 중심으로 영성회복이 있어 왔다면 오늘 날 코로나의 여파로 회손된 교회의 영성 또한 수도원 공동체로 회복되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인사이트를 주셔서~~~^^   삭제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