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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진 교수의 구약성서 강론(91)사무엘서의 신학적 개요
  • 최종진 박사(구약학)
  • 승인 2022.10.20 22:26
  • 호수 565
  • 댓글 0
서울신대 제13대 총장, 명예교수

6) 이스보셋의 암살(4:1-12)
7)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5:1-5)
8) 예루살렘 점령(5:6-16)
9) 블레셋 격퇴(5:17-25)
10)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봉안(6:1-23)
11)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계약(7:1-29)

b. 제2기-다윗의 중년(8:1~19:43)

1) 다윗 치세의 군사적 업적(8:1-18)
2) 다윗과 므비보셋(9:1-13)
3) 암몬, 아람 사람을 이긴 이스라엘(10:1-19)
4) 밧세바를 취한 다윗(11:1-27)
5) 나단의 책망(12:1-23)
6) 솔로몬의 출생(12:24-25)
7) 암몬 자손의 랍바를 탈취(12:26-31)
8) 암논과 다말(13:1-22)
9) 압살롬의 복수와 도망(13:23-39)
10) 압살롬의 복귀(14:1-33)
11) 압살롬의 반역(15:1-12)
12) 다윗의 망명(15:13~16:14)
13) 아히도벨과 후새(16:15~17:29)
14) 압살롬의 패망(18:1~19:8a)
15) 다윗의 예루살렘 귀환(19:8b-43)

c. 제3기-다윗의 말년(20:1~24:25)

1) 세바의 반역(20:1-26)
2) 3년 기근과 사울 가족 7인 처형(21:1-22)
3) 다윗의 감사 노래(22:1-51)
4) 다윗의 유언(23:1-7)
5) 다윗의 용사들의 공적(23:8-39)
6) 다윗의 인구조사와 재앙(24:1-25)
다윗이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고 가나안 전 국토를 평정하여 이스라엘 전체 민족의 통일을 완성한 전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5. 왕정(王政)의 시작

1) 지파 동맹체의 쇠퇴
사사시대의 시대상을 성서는 사사기 맨 마지막 절에 “그때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고 기록하여 혼란의 시대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은 야웨의 구원행위라는 구심력에 의한 공동계약을 중심으로 뭉쳤으나 이런 구심력을 약화시키려는 원심력도 만만치 않았다. 여기서 신정국가에서 왕정국가로 큰 변혁의 역사를 이루는데 이를 기록한 것이 사무엘서이다. 그 변혁의 동기가 되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지파 동맹체의 쇠약이다.

(1) 정치적 압력증대: 국제적 외교관계가 증대되면서 백성의 대표성 문제가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한편 사회적 문제인 원주민과의 관계 개선이 이스라엘 백성의 통일성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2) 동맹체의 취약점 노출: 전쟁이 일어날 때 지파간에 모병이 안 되었다. 집을 요구했으나 거기에 응한 지파는 절반밖에 안 되었다. 입다가 암몬임을 대적할 때도 에브라임 자손이 동원되지 않았다. 그만큼 각 지파는 그 성격상 독립성이 강했다. 결국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의한 신정제도의 한계성이 드러났다.

(3) 지파간의 갈등 표출: 사실 사사들의 지도력은 부분적이었다. 그들은 지파의 영웅이지 전 민족을 다스리는 통치자는 아니었다. 각 지파들은 요단 동편과 서편, 가나안 북쪽과 남쪽의 지리적 차이로 지방적 방언, 풍습 그리고 정치적 견해 차이로 갈등이 빚어졌다. 결정적인 것은 베냐민 지파의 불량배들이 레위인의 첩을 윤간하여 살해한 사건이 확대되어 온 이스라엘이 일어나 베냐민 자손과 치열한 전투를 하여 이스라엘도 막대한 피해가 있었고 베냐민 사람들은 거의가 진멸될 정도로 비극적 결과를 가져왔다(삿 19:~21:).

(4) 지도자의 빈곤: 사무엘 같은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아들조차도 아버지의 길을 따르지 않고 돈벌이에만 정신이 팔려 뇌물을 받고서, 치우치게 재판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아드님들은 어른께서 걸어오신 그 길을 따라 살지 않으니 우리에게 왕을 세워주셔서 왕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왕을 요구하게 된다(삼상 8장).

(5) 제사장 계급의 타락: 제사장 엘리의 모습 속에서 당시의 종교 지도자의 타락된 형편을 볼 수 있다. 엘리 제사장은 늙고 눈이 어둡고 그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쁜 악한 자들로 야웨를 무시하고 제사 제물을 탈취하고 심하게 큰 죄를 저질렀다. 회막에서 일하는 여인들을 겁탈하고 그들이 저지른 온갖 잘못이 소문으로 백성들에게 알려져 실망이 컸다(삼상 2장).
당시에는 야웨의 말씀이 희귀하고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는 영적 암흑의 시대였고(삼상 3:1) 드디어 실로가 파괴되면서 야웨의 법궤인 언약궤를 블레셋에서 빼앗기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야웨신앙(Yahwism)의 몰락을 의미했다. 바로 지파 동맹체 핵심의 근거가 사라져 가는 듯한 위기였다.

(6) 블레셋의 빈번한 침략: 팔레스틴 남부 해안 평야에 정착하여 군주국가를 형성한 블레셋은 철병거로 무장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침략해 왔다. 블레셋의 끈질긴 공격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 자체를 위협했다. 사실은 블레셋의 위협이 이스라엘의 왕정 요구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불안정한 상태에 있던 이스라엘은 주위 나라들과 같은 강력한 왕권이 필요하다고 보아 왕을 강력하게 요구하게 된다.

2) 왕정제도의 시도

(1) 기드온 시대의 시도: 기드온은 미디안 7년의 지배에서 기적적으로 그들을 격퇴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한 카리스마적 영도자였다.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장군께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대를 이어 아들과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 하여 세습적 군주직을 맡아달라는 요구를 한다. 그러자 기드온의 답변은 단호히 왕정제도를 거부하고 신정제도를 천명한다. “나는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야웨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실 것입니다”(삿 8:22-23). 당시 진보주의자들은 군주국가의 왕정제도로 변혁을 요구했으나 보수주의자들은 전통적인 신정제도를 고수하려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 아비멜렉의 사건: 기드온의 첩의 아들 아비멜렉이 외가 세겜에 가서 건달과 불량배(정치 깡패)들을 동원하여 적수라 생각되는 그의 형제 70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다. 그리고 그가 3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삿 9:1-22). 그때 막내아들 요담만 살아 왕정에 대한 부정적 견해로 갈등을 유발시킨다.

결국 아비멜렉은 세겜 성읍 사람들이 배반하여 전쟁 중에 망대에서 한 여인이 던진 맷돌 위짝에 맞아 치명적 상처를 입고 병사의 칼에 찔려 죽게 된다(삿 9장). 그러나 당시의 여러 여건과 상황으로 인한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의 필요성에 의해 결국 지파 동맹체의 막이 내리고 왕정으로 자연스레 넘어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시대의 과도기를 지나면서 그들을 다스릴 왕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3) 왕정제도(王政制度)에 대한 견해

a. 긍정적 견해(삼상 9:1-10, 11:1-11, 15, 13:2~14:46)

신명기 17:14-20에 의하면, 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 계획 밖의 일이 아니었다.
“네가 네 하나님 야웨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서 그 땅을 얻어 거할 때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열국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우리라는 뜻이 나거든 반드시 네 하나님 야웨의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으로 할 것이요”(신 17:14)

왕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께 반역이라든가, 하나님이 못마땅해하는 일이 아니라 허락된 일로 암시가 된다. 여기에 의하면, 다만 왕을 세울 적당한 시기가 언제냐는 것이 있을 뿐이다. 이 시기까지 이스라엘의 통치체제는 요셉푸스가 말한 소위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하나님께 속한 신정(神政)이었다.

최종진 박사(구약학)  dsglory36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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