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4.2.23 금 16:59
상단여백
HOME 기고/오피니언 특별기고
연재/서종표 목사 - 4無의 삶을 산 김용은 목사(3)김용은 목사의 생애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10.19 16:33
  • 호수 565
  • 댓글 0
                      김용은 목사

그의 기도는 초저녁부터 시작되어 밤이 깊도록 계속됐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기도에 지치면 찬송으로 힘을 얻었고, 찬송에 지치면 기도로 힘을 얻었다. 기도하는 가운데 호랑이가 나타난다 한들 무섭지 않았다. 밤을 새워 기도하며 찬송하였다. 날이 밝고 있었다. 용은은 혼절하듯 잠이 들었다.

이튿날도 산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깊은 숲인지라 오로지 기도에만 매달리라는 주님의 인도가 아닌가 싶었다. 용은은 이튿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어머니가 싸준 주먹밥을 조금씩 먹었다. 삼 일째 되는 날 새벽이었다. 기도와 환상 속에 몸은 더웠다 식었다를 반복했다. 용은은 지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자세 그대로 몸이 옆으로 기대어졌다.

그런데 십여 미터 떨어진 잔가지 나무에서 작은 불빛이 일더니 조금씩 불길이 되어갔다. 빛인지 불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불빛의 진동이 용은의 얼굴에 닿는 듯했다. 용은은 불을 끄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자 불빛이 사그라들었고 다시 앉자 또 불빛이 켜졌다.

마치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느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출 3:2)라는 말씀을 보여주시는 듯했다.

그의 마음에 담대함이 일었다. “하나님 아버지, 당신이시니이까?” 온 힘을 다해 불빛으로 다가서며 묻자 불빛이 커지고 작아지기를 반복하더니 다가가자 또 멀어졌다. 용은이 멈추면 불도 멈췄다. 용은은 불빛을 따라 산길을 오르고 내려갔다.

불빛은 숲을 헤치고 능선을 넘어 아래쪽으로 나아갔다. 용은은 그 길을 말없이 따라갔다. 행여 놓칠까 봐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불빛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불빛은 어느새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 두리번 주변을 살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피니, 그가 서 있는 곳은 급경사로 된 산비탈 위 기상대 자리였다.

발아래로 신작로가 길게 뻗어 있고, 그 앞은 바다였다. 출렁이는 바다 위에 큰 화물선 한 척이 떠 있었다. 배에 적혀있는 글을 읽어보니 ‘후쿠오카마루(福岡丸)’였다. 삼촌이 계시는 후쿠오카(福岡縣)라니. 용은은 놀라운 인도하심에 눈이 열렸다. ‘저 배를 꼭 타리라, 하나님 아버지 순종하겠나이다.’ 당시 후쿠오카마루(복강환)는 화물선이었다.

십대 후반 소년이 혼자서 일본 후쿠오카에 간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더구나 돈 있는 사람들이 밀항 브로커에게 도항 수수료를 주고 소형 발동선을 이용해 출항한다 하더라도 종종 해안 경찰에게 붙들려 송환되곤 했다. 도항 수수료가 20~25원이나 되었고 밀항은 중대한 범죄였다. 용은은 예수님의 심정으로 닫힌 문을 두드렸다.

마침 열린 선미 문을 통해 갑판 위로 올라가 뱃머리 선장길로 들어갔다. 신기하게 누구의 제지도 없이 길이 열렸다. 갑자기 남루한 청년이 불쑥 선장실로 들어오자 선장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용은은 일본어를 배웠기 때문에 일본말을 할 수 있었다.

그는 말했다. “저는 일본으로 가고 싶습니다. 후쿠오카로 가고 싶습니다. 선장님, 배 좀 태워 주십시오.” 선장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물었다. “일본에는 왜 가려고 하느냐?”

“공부가 하고 싶습니다. 더 넓은 세계에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배운 지식으로 남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집이 가난해서 학업을 더 할 형편이 안 됩니다. 후쿠오카에는 삼촌이 계십니다.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유숙하는 데는 문제 없습니다. 선장님께서도 저만한 자식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저는 공부가 하고 싶습니다.” 자식 얘기가 주효했던 걸까? 선장의 눈빛이 흔들렸다.

선장은 잠시 눈을 지그시 감더니 말했다. “좋다. 네가 공부를 한다니 내 자식이 생각나 너를 태워주마. 다만, 너는 도착할 때까지 선수 밑 화물 사이에서 절대 나오면 안 된다. 걸리면 우리도 곤란해진다.” 그렇게 용은은 선장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 장인 박태권 영수와의 만남과 결혼

용은은 외삼촌의 안내로 1936년, 18세에 후쿠오카 시립중학교를 다녔지만, 공부는 쉽지 않았다. 낮엔 삼촌네 철물일을 하거나 고향에서 배운 이발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된 일에 영양실조로 걸핏하면 코피를 흘렸다. 게다가 야간부 일본 학생들이 ‘오이, 빠가야로, 조센진’이라 부르며 괴롭히는 일이 잦아 정신적 고통도 심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