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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서(76)해방 이전 한국성결교회의 만주 선교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10.05 15:21
  • 호수 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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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운 박사(본지 논설위원, 전 성결대 총장, 교수)

(1) 동만지방 선교 교구

동만지방의 선교는 용정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용정교회의 설립과 부흥은 자연히 동만 지방의 발전과 연결되어졌다. 용정교회 부흥의 계기는 감리교회 출신인 조승각(趙承珏)을 경성성서학원에 지원하게 하여 성결교회 목사가 되게 하였고, 장로교회에서 황성택, 박문익, 김인석(金仁錫), 김선학(金善學) 등 용정교회 교인들이 경성성서학원을 졸업하고 성결교회 목사로서 동만 선교에 기치를 더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932년 6월에 김인석 전도사는 천보산 정수동(井水洞)교회로 파송되었다. 명월구에서 신개척함을 필두로 하여, 1934년에 조양천(朝陽川)교회를 김선학 목사가 개척하였다. 이듬해 계속해서 목단강교회, 도문교회가 계속해서 세워졌다. 그리고 동만 현청 소재지인 연길에 이정원(李源) 목사가 연길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따라서 선교 개시 10년 동안에 동만 지역 한국인 거주 지역의 주요 도시에는 거의 성결교회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동만 지역 교구의 1940년대까지의 교회 설립 현황을 정리하자면 '표 6'과 같다.

                                 표6. 동만교구 교회 설립 현황 (1940년까지)

(2) 만주지방 선교 교구

남만(南滿)에서의 성결교회의 선교 활동은 북만(北滿)에서 보다 7년이 지난 뒤인 1932년에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앞서 살펴본대로 1932년 1월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에서 파송받은 박문익과 신원식 두 사람이 봉천에 들어가, 주로 봉천 피난민수용소 전도를 통해 많은 선교의 성과를 올리고, 1932년 4월 20일에 봉천교회를 설립함으로써 남만에서의 성결교회의 만주 선교는 개시되었다.

이어서 1932년 8월 25일에 김광준 목사가 북릉(北陵)교회를 설립하였고, 10월에는 안동(安東)교회를 개척하였다. 그 뒤를 이어 포하(浦河)교회와 구련둔(溝蓮屯)교회가 세워지고 심양(瀋陽)에 성결교회가 계속해서 세워져 짧은 시간 내에 남만 중심 지역의 선교가 성과를 거두는 동시에, 봉천교회가 남만 선교의 중심 센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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