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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가을 횡설수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10.05 14:53
  • 호수 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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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 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 저자 )

혜시는 백수인 장자와 달리 명민한 친구였다. 출세도 하고 돈도 많은 혜시는 장자가 추구하는 세상이 아무런 쓸모없는 것들로 여겨졌다. 그래서 장자에게 말한다. ‘자네 말은 도무지 쓸모가 없어’ 장자가 대답한다.

‘저 땅은 턱없이 크고 넓지만 길을 걸을 때 소용되는 곳이란 발이 닿는 지면뿐이네 그렇다면 발이 닿는 부분만 빼고 그 둘레를 황천까지 파 내려간다면 남은 부분이 쓸모가 있겠나, 그러니까 쓸모없는 것이 실은 쓸모 있는 것임이 분명하잖은가.’ 장자가 혜시를 얕본 것은 아니다. 비유치고는 아주 기막힌 비유를 들어서 그의 좁음을 말한 것이다. 

글은 세상과 사람을 읽게 하는 일목요연한 길이다. 예전에는 어딜 가려면 핸드백에 책을 꼭 담곤 했는데 이즈음은 손전화가 책을 대신한다. 자투리 시간에 휴대전화만 펼치면 거기 온 세상을 덮고도 남을만한 글 판이 펼쳐진다. 수많은 신문 기사와 에세이들, 영화 문학 연극 음악 미술에 관한 생각들과 삶의 이야기들, 경기도 사이버 도서관에 들어가면 전자책도 무한하다.

겨우 손바닥 안에서 펼쳐지는 글이라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 공평을 좋아하는 세상살이에 인터넷은 딱 알맞은 매체다. 더 쉬운 것은 검색 창에 원하는 단어만 치면 무수한 답들이 일렬종대로 늘어선다는 것이다. 생각해야만 하는 일도, ‘생각’ 대신 검색란을 사용한다. 몰랐던 지식이 나래비 서고 내 생각이 아닌 타인의 생각이 펼쳐진다.

그렇다고 해서 그 엷음조차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 생각이 아닌 남의 생각, 내 느낌이 아닌 남의 느낌을 내것일 수는 없다. 내가 들어있지 않는 ‘곳’과 ‘것’은 결국 부재를 의미한다. 어쩌면 작금의 시대는 부재를 존재로 오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국민학교 때, 머리가 커다란 아이가 있었다.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눈에 띌 정도로 머리가 큰 아이, 머리가 커선지 눈도 컸다, 지금 생각하면 특별한 질환이 있었을 것이다. 자주 결석했고 어느 땐가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으니, 근데 그 아이를 보면서 머리가 크니 공부도 아주 잘 할것이라고 생각했던 기억(기억은 나와는 상관없는 저만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이 난다.

돌이켜 보건데 그때의 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절이었을 것이다. 어떤 틀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 그러니 그 머리 큰 아이도 자연스레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피카소도 어린아이처럼 그릴 수 있는 경지를 원했던 것이 아닐까, 점점 신발에 민감해진다. 신발이 편하면 온몸이 편하고 신발이 편치 않으면 온몸이 편치 않다.

편한 것은 돈과도 상관이 없고 볼품과도 상관이 없다, 물론 가끔 금상첨화도 있긴 하지만, 신발만 그럴까, 존재 역시 소유나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자족할 수 있는 삶의 태도에 자유로움과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 언젠가 북한산 문수봉을 가는데 가다 보니 길이 아닌 것 같은 느낌, 길은 나 있지만,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스산함이 가득했다.

살짝 무섬증이 들었을 때 하얀 털이 바람과 함께 훅 날아왔다. 무엇인가에 무엇인가가 잡아먹히는 현장에 털이 수북했다. 정신없이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아선지 작은 키에 눈부시게 하얀 꽃망울들, 구절초가 유별나게 많았다. 그 사이로 연보랏빛 쑥부쟁이도 흔들거렸다. 그러다가 환해졌다. 능선에 다다른 것, 생각지도 않았던 나월봉 표시가 나타났다.

의도와는 전혀 다른 길을 목적지인 양 걸었던 것이다. 헤맸던 산길을 기억하는 것은 헤맴 때문일까, 아니면 아름다운 길이어서? 쑥부쟁이와 구절초를/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絶交다 //안도현//무식한 놈

가을이면 생각나는 시다. 나와의 절교를 생각하는데 가을만 한 시절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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