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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抒情을 採錄하다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9.28 11:18
  • 호수 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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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 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 저자 )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오래전 동아일보 사이트에 抒情採錄라는 당호로 내 글을 싣는 칼럼난이 있었다. 서정채록은 抒情을 採錄하다는 뜻으로 내가 만든 조어이다. 단어 상으로 서정은 자기의 감정이나 정서를 그려 내는 것이라고 타자화시키지만 실제 서정을 음미하다 보면 서정은 나에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로부터 다가오는 것이다.

마치 밀물이 몰려와 모래사장을 지우며 無의 형상을 만들 듯이 서정은 어딘가에서 다가와 사람을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다. 시의 서정, 예술 작품이 주는 서정, 자연에서 다가오는 서정은 단순한 감정이나 정서가 아니라 그것들을 이끌고 지금 현재 거 하고 있는 이 세계를 떠나게 하는 힘이다. 서정은 감정이나 정서를 지나 그만의 오롯한 세계로 항해하는 우주선이다.

강화에 가면 청련사가 있다. 예수쟁이인 내가 절에 가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곳에서 만나는 숲과 나무 때문이다. 높지도 가파르지도 않은 조그마한 산길에서 초가을 숲은 말라가는 나뭇잎 냄새로 그득하다. 크고 작은 이파리들의 습기가 투명한 공기 속에서 형체를 지닌 채 부유하다가 콧속으로 스며들어온다.

그들을 소멸에 대한 회한의 향기라고 하자. 거대한, 우람한, 그러면서도 잔잔하기 그지없는 느티나무 한그루가 표표히 서서 나를 바라다본다. 저물어가는 햇살이 옆으로 길게 새어 들어와 오히려 나무에게 신비로운 음영을 드리워주고 있다. 그는 금빛 햇살에 아랫도리를 환하게 밝힌 채 나를 반겨 맞는다. 수줍으면서도 당당하게 그러면서도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관찰한다.

설마, 혹시, 당신, 나무와의 상견례시 당신만 나무를 바라본다고 생각지는 않으시겠지. 오히려 나무는 오래 산자의 홀연함과 세월을 견딘 자만이 지을 수 있는 원숙한 시선으로 당신을 깊고 은근하게 바라볼지니, 나무와 조우할 때 심심한 겸손을 견지할 일이다. 존 러스킨은 데생을 아주 못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생을 해야 하는 이유는 ‘잘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는 법을 알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데생 이야기가 아니다. 삶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되기에 충분하다. 물론 나무의 시선으로도 그윽하다. 그리하여 이제 내가 아는 것은 누구나 다 나무를 본다고 해서 나무를 보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도이다.

한순간에 나를 반하게 하는 나무 앞에 서면 경하게 오메! 소리를 내뱉지는 않는다. 잠시 숨을 훅 들이켤 뿐이다. 삼백 년이 넘는 시간을 한결같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봄이 오면 여전히 젊은 엄마처럼 여린 싹 내어내고 여름엔 무성한 젖으로 키우며 가을이면 땅으로 무참하게 돌려보내는, 차가운 겨울을 신음 한번 없이 꿋꿋하게 버티는 인내의 제왕, 아득한 나무의 우듬지를 알 것인가, 자라나는 가지의 결을 알 것인가, 상처 나고 짓물렀던 곳에 생살이 돋아난 의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저 푸르렀던 나뭇잎의 생을 알 것인가.

노랗게 변해가며 펄럭이며 져내라는 슬픔을 알 것인가, 땅속 고요한 곳에 자리하고 서서 침묵의 몸짓으로 저 거대한 몸을 지탱하고 있는 뿌리의 힘을 혹 꿈이라도 꿀 수 있을 것인가, 힘겹게 땅으로 솟아난 나무의 뿌리 위에 살포시 늦가을의 이불이 되어주는 상냥한 이파리는 아직도 싱싱하게 숨을 쉬고 있다. 저 짙푸른 초록은 금방 변할 것이다.

물들어가는 단풍잎이 빚어낸 놀라운 조화로움은 또 어떤가, 사실 서정과 채록이라는 두 단어로 내 글의 향방은 그때 이미 정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사물과 자연, 그리고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서정이니까, 서사를 좋아하지만, 서사의 결론도 결국 서정일 것이다.

서정은 삶을 고귀하게 여기게 하는 순화된 힘이다. 사람을 선하게 하는 삶의 묘약이기도 하다. 내게 다가오는 수많은 만남과 관계 속에서 등장하는 서정을 채록하는 것이 나의 글쓰기다.
지금도 내 글들에 썩 어울리는 서정채록.
가을이라선지 거미집 같은 나의 글을 나무처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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