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4.5.22 수 17:45
상단여백
HOME 기고/오피니언 특별기고
존 웨슬리의 교회 안의 작은교회 선교운동 (17)제4장 ‘교회 안 작은 교회’ 역사적 배경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8.31 17:26
  • 호수 560
  • 댓글 0
이재완 목사(영암벧엘교회)

그 후 데이비드 개릭(David Garrick)은 과감하게 시정을 시도했으나, 많은 연극 애호가들이 복고 연극의 극심한 외설을 좋아함으로써 그의 노력은 실패했다. 화려한 무도장은 치욕스러울 정도로 감각적이었다. - “샴페인, 주사위 놀이, 음악, 또는 당신의 이웃의 배우자” - 이런 것들이 초청장에 광고로 실렸다. 성행하던 문학적 취향도 매우 비도덕적이었다.

 또한 국가는 음주와 도박이란 두 올가미에 빠졌다. 폭음은 모든 계급 속에 스며들었다. 조지 크랩(George Crabbe)의 작품 속 풍자에는 사회 구석구석에 있는 폭음을 묘사하였는데 “비틀거리는 귀족”과 “가련한 은급 수령자”, “안일한 군목”과 “연회를 즐기는 교구목사”도 포함되어 있다.

레키(W. E. H. Lecky)에 의하면, ‘진’(Gin)을 마시는 풍조가 1724년 경에 대중에게 번지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사회에 깊이 뿌리박으면서 전염병과 같은 속도로 번져갔다. 대중 도박장이 공식적으로 인가되었으며, 왕가에서부터 시청 직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유행하는 풍조에 휘말려 경제적, 도덕적으로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 

트리벨리언(George Otto Trevelyan) 경에 의하면 “그 당시의 영국 사회는 하나의 거대한 도박장이었다.” 국가의 도덕적 타락은 잔인하고 모욕적인 경기, 즉 닭 던지기, 거위타기, 개교미, 소 놀리기 등을 허용했으며, 난폭한 범죄의 통계가 가공할만하게 증가되었고, 교수형이 지나치게 빈번해졌기 때문에 존슨(Johnson)은 풍자적으로 표현하기를, 해군에 밧줄이 동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컴벨 모건(C. Morgan) 박사는 “세계의 무관심은 대체로 강단에서의 열정 부재의 결과”라고 하였고, 올리버 골드 스미스(O. G. smith)는 이 비판을 교역자들에게 돌렸는데, 즉 “그들의 설교는 메마르고 방법론적이며 사랑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들은 지나칠 정도로 조용히 말하고, 평화로운 설교자는 그 머리를 천정을 향하므로 청중을 참회로 이끄는 대신에 졸게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기독교적 기반의 훼손이 18세기 신앙과 도덕의 붕괴 이면에 깔려 있었다. 웨슬리의 복음운동이 필요하게 된 것은 이러한 배경을 전제로 한다. 더 나아가서, 웨슬리는 이성에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초월하고 능가하는 복음의 근본적이고 초자연적인 실재에 대한 재확신을 가지고 당시의 합리주의적 회의주의의 풍조에 맞섰다.

존 웨슬리가 회심한 1738년 영국의 도덕과 종교는 어떤 기독교 국가에서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게 부패되었다. 산업혁명의 결과로 영국은 당시 유럽의 여러 나라로부터 이주자가 몰려와 인구가 팽창하였고, 상공업의 발달로 실직자와 파산자가 속출하여 빈부의 격차는 날로 심화되어 빈민과 걸인이 늘어나므로 인하여 각종 범죄가 성행하였다.

 18세기 당시의 도덕적인 상태 역시 부패 그 자체였다. 스포츠는 잔인했으며, 정치인이나 법관, 그리고 종교인이나 민중 등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부패하였다.

  3) 철학사상 및 도덕적 상황

웨슬리 당시에 성행하였던 철학사상은 이신론(Deism) 곧 자연신론이었다. 이신론(Deism)이란 초월적인 신을 주장하되, 그 신은 창조주일 뿐 이 세상의 과정에는 관심을 갖고 관여하지 않으며 우주나 세상은 그 자체의 운명에 일임되어 있다고 믿었으므로 타계로부터의 하나님의 계시나 기사, 이적 등의 초월적인 것은 믿지 않는 일종의 자연신론의 체계이다.

 따라서 이들 이신론자들은 기독교를 자연주의화 하는데 주력하였고 기독교에서 초자연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리하여 첫째, 계시와 이성의 조화를 시도하기 시작하였고, 둘째, 위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계시의 가능성과 전통적인 초자연주의에 대하여 질문을 제기하며, 셋째, 마침내 신앙을 이성에 예속시키는 일을 강조하였다.

이런 이신론 운동의 대표자는 매튜 틴달(M. Tindal)이다. 존 오어(John Orr)에 의하면, 틴달은 Christianity as Old as Creation에서 이신론 운동의 모든 사상들을 종합했다. 틴달은 계시의 불필요성, 성경의 불일치 등 기독교 진리의 핵심적인 부분을 변질 혹은 보편화시켰는데 이것이 18세기 영국의 이신론 철학의 기조가 되었다.

첨언하면 18세기 영국의 이신론은 이성으로 종교를 해석하고 성서의 특수 계시를 부인하며, 종교의 보편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합리주의적 사상운동은 체험 중심의 경건주의와 서로 깊은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성의 시대에 살았던 웨슬리 역시 시대의 영향을 받아 인간 이성의 역할과 자유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18세기 영국의 신학자였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