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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교회 탐방> 상주 양평교회“양평교회, 도시교회와 상생의 길을 가다”
  • 기독교헤럴드 편집국
  • 승인 2022.08.19 15:42
  • 호수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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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복음은 상주시 변화와 발전에 필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경북서지방회 양평교회는 도영환 목사가 2017년 7월, 담임목사로 부임하며 새로운 부흥과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 이곳에 부임하기 전에도 도 목사는 신일교회, 모리아교회, 서호교회, 서울교회에서 부교역자로 동역하며 목회하였다. 도 목사는 영적 도전과 새로운 변화의 필요성을 느껴 농촌지역인 상주 양평교회에 부임해 5여 년 동안 목회하고 있다.
 
왼쪽부터 도영환 담임목사(두 번째) 부부 및 김동진 장로(세번째) 부부

 

■ 지역소개 및 교회의 특징 

양평교회가 위치한 경상북도 상주시는 1,254.80km2의 넓은 면적에 인구는 9만 7천여 명 정도로, 인구밀도가 상당히 낮다. 자전거의 도시, 곶감의 도시로 유명하다. 전형적인 농촌기반의 소도시이지만, 대구광역시, 대전광역시, 청주시가 모두 1시간이면 접근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에 문화생활을 누리기에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그리고 속리산국립공원을 끼고 있기도 하다.
 
도 목사가 정착한 이 지역에서 성결교회는 양평교회가 유일하다. 이곳에 부임하면서 크게 역점을 둔 것은 기도사역과 함께 교육관 건축, 카페 만들기, 간이 수영장 조성 등이다. 농촌교회지만, 현대식으로 아름다운 교회 만들기에 힘을 쏟고 있다. 더 나아가 자신이 인삼농사에 뛰어들어 농촌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 도 목사는 인삼농사에서 얻은 수익을 전액 교회에 헌금하여 재정자립도를 높이고 있다. 
 
 
8월 7일 주일예배 설교모습.
 
■ 담임목사 소개 
도 목사는 사모와 슬하에 삼남매(딸 2명, 아들 1명)의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40대 접어든 중년에 하나님의 전적인 인도와 예비하심을 믿고 사역하는 전형적인 무조건 신앙에 입각한 목회자이다. 학업에도 열중하여 침례신학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백석대학교 대학원에서 학문을 연구하며 신학도로서 가장 기본적인 학업에 충실했던 목회자이다. 뿐만아니라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 손수 인삼농사에 뛰어들었다. 기도로 성도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면서 교육관도 건축하였다. 당시 후원자를 발굴 할 때도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간구하였고, 믿음의 기도는 불가능한 일을 감당할 수 있었다.
 
 
■ 목회철학과 방향
도 목사의 중점 목회철학 그리고 비전은 십자가의 복음이다. ‘그리스도에 붙잡힌 양평교회’, 그래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는 성도의 삶’, ‘온전한 치유와 변화가 있는 교회’, ‘모든 시험을 넉넉히 이겨내는 성도’를 위해 말씀을 전하며, 기도에 전념하고 있다. 농촌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맞춤형 목회를 지향하고 있다. 교회건물을 지역사회와 친근하게 꾸미고, 누구든 찾아와서 차 한 잔이라도 할 수 있도록 안락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아무나 찾아와 상담으로 감동을 주는 편안한 전도자로서 행동한다. 
 
간이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양평교회 학생들.
 
■ 앞으로 목회계획 
상주 양평교회의 목회방향을 눈여겨볼 점은 도시교회와 상생의 길을 여는 것이다. 서울 은평성결교회(유승대 목사)에서 청년들이 이곳에서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를 가졌다. 은평성결교회는 양평교회와 5년간 협력관계를 맺고 있으며, 청년 중에는 귀농을 꿈꾸며, 농촌에서 살고자하는 청년들과 상담한다.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사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서울지역의 교회 성도들 중에는 고향인 상주를 찾아 부모를 모시고,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상주 양평교회에 등록하여 신앙생활을 하면 얼마든지 함께할 것이다. 
 
김동진 장로
포도밭을 경영하는 양평교회 김동진 장로는 “도영환 목사님이 부임한 후, 많은 변화가 있었고 교회도 부흥해 가고 있다”고 자랑했다.
 
■ 인터뷰
· 일    시 : 2022년 8월 7일
· 장    소 : 상주 양평교회 목회실
· 대 담 자 : 도영환 담임목사 
· 대담진행 : 박지현 편집국장
  
 
 
Q. 목사님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A. 네, 먼 곳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은 경상북도 상주시 끝자락에 자리한 농촌이며, 산골자기에 세워진 양평교회입니다. 앞에 보이는 산을 넘으면 충청북도입니다. 무더위의 한 낮에 해가 어느덧 산 뒤로 넘어서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양평교회를 섬기는 도영환 목사입니다.
 
Q. 가족 사항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A. 가족은 저희 부부와 삼남매(딸 2, 아들 1)가 있으며, 각각 교회를 위해 맡은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큰 아이는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해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8살 터울의 둘째는 애교로 봐줄 수 있는데, 막내가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그런데, 양평교회에 부임하고 보니 “이 때를 위한 하나님의 큰 그림”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교회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이 모두 9명입니다. 둘째와 셋째의 친구들이며, 우리교회 주일학생수가 이 지역 화동초등학교의 20%가 넘는 학생수입니다.
 
Q. 농촌목회에 헌신한 계기가 있나요? 
A. 저는 시골에서 태어났고, 농사꾼의 아들로 자라났습니다, 농촌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목회의 길을 걷기로 다짐했습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더 농촌교회를 잘 알고, 농촌목회를 이해합니다. 다만, 농촌목회를 원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도 도시목회를 통해서 안정적인 목회를 하기 원하셨습니다. 저는 전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곳 양평교회에 하나님께서 제게 맞는 일터이기에 저를 이곳에 보내셨고, 저는 이곳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Q. 사역하는 목회지를 소개해 주십시오. 
A. 이곳 양평교회는 창립 35주년 된 교회입니다. 산 넘어에 있는 중놀교회 청년들이 고물을 팔아 모은 돈으로 산을 넘어와 전도하면서, 이 지역에 교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평산리 한 가정집 마당에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면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20여 년 전 현재 자리로 옮겨 예배당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땅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동네 주민들의 반대도 많았지만, 농촌집을 짓는다고 회유한 다음에 예배당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그 과정에 땅을 드린 분의 아들이 올해 장로님으로 장립하였습니다. 여러 목사님들이 양평교회를 목회하다가 떠나가고, 그러한 가운데 교회가 분열되는 과정도 있었지만, 2017년 제가 부임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Q. 처음 목회할 때와 현재 농촌목회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A. 2017년 7월 양평교회에 부임했을 때 목회자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다면 어디라도 순종하고 가겠다고 결심하고, 결단하였지만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처음에 가족들과 함께 양평교회가 있는 곳을 보기 위해 네비게이션을 보면서 운전했는데, 그때 가족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산속으로 안내해서, 이곳에 무슨 교회가 있을까? 그런데 나지막하고, 빛바랜 양철지붕 건물을 보면서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그 건물이 교회였습니다. 부임할 당시에 비가 많이 왔고, 교회 온 마당은 풀이 수북했으며, 쓰레기장이 있었습니다. 마을 이장이 저에게 “새로운 목사님이 오셨으니까 이 지역의 농사도 잘되어야 하는데 목사님 책임이 크겠습니다” 그 후 6여 년 포도 농사가 잘되어 부농(富農)이 되었고, 길가에 새로 지은 집과 창고들이 마을을 새롭게 단장하게 되었고, 물론 교회도 교육관 신축과 리모델링을 통해서 단장을 마쳤습니다. 이런 많은 변화는 저와 양평교회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시고, 기도해주신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Q. 농촌목회의 애착이 있을 것 같습니다. 
A. 농촌목회의 애착이라기보다 현실적인 문제로 인생의 2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귀농 귀촌을 권할 때면 제일 먼저 저에게 질문하는 것이 “목사님, 양평교회 가까이에 병원이 있나요?”하는데 첫 번 질문부터 대답하기가 어려운 질문이었습니다.
이사 온 후 첫 주간에 막내가 복숭아를 먹던 중 아이의 기도가 막히면서 쓰러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119에 전화를 하고 응급처치법을 아이에게 실시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갈비뼈라도 부러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강하게 처치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미 아이의 몸은 축 늘어져 누워있었고, 의식도 점점 사라져 갔습니다. 그때 온 가족이 막내를 위해 울며 기도했습니다. 두 번의 구토를 하고 아이가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때까지도 119는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2시간이 지나 119 사이렌 소리가 들렸고, 저는 비를 맞으며 구급대원들을 맞이하러 마당에 나갔습니다. 아이는 무사했습니다. 그때 목사인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를 다시 살려 주셨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2021년 10월 말. 저에게도 위기가 닥쳤습니다. 교회 건축, 리모델링, 전도, 농사일을 쉼 없이 하며 달려왔던 제 몸에 이상이 왔습니다. 성도님의 농사일을 도와주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날 밤부터 일주일을 잠만 자게 되었습니다. 혹시 모르니 동네 의원에 가보라는 권유로 병원을 찾았으나 과로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의 증상을 듣던 한 목사님이 자신의 아버지가 겪었던 병과 비슷하다며 큰 병원을 소개해 줬습니다. 진료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뇌경색” 그리고 곧바로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병상에서 기도하며 지금까지의 사역들을 뒤돌아보았습니다. ‘이제 내가 다시 목회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제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목숨을 이제 다시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장애 하나 없이 지속적인 약물치료를 받으며 회복하고 있어, 간증이 있는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Q. 그렇다면 보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A. 제가 부임할 당시 이 지역에 소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양평교회가 없어진다는 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지역 발전과 더불어 교회의 외부도 변화했고, 지역의 성장만큼 교회도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부임할 당시 교회는 10여 명의 성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생존을 위해 변화를 택했고,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과 지역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지역주민들의 근심거리인 “교회”가 아니라 교회가 지역을 품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큰 보람이며, 하나님께 감사의 제목입니다.
 
Q. 한국교회가 농촌목회에 대하여 어떤 관심이 있어야 할까요? 
A. 저는 양평교회에 부임하고부터 농사일을 직접 하면서, 목회를 병행했습니다. 많은 분 들은 오해를 하는데, 농촌목회를 하면서 경제적 플러스 요인을 위해 농사를 짓는다고 생각하는데, 농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농사를 병행하는가? 그것은 전도 차원의 접근 입니다. 얼마나 자신들의 삶을 이해하는 분이 오는가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죠. 그렇기에 단순한 목회를 위해 농촌을 택하는 것은 오늘날 현장과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Q. 후배들에게 농촌목회를 조언하신다면? 
A. 저도 부족한데 제가 누구에게 조언할 수는 없는 것 같네요. 다만 농촌지역 주민들의 바람은 한가지입니다. 단기간에 승부를 보고, 다른 임지가 났을 때 옮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라도 준비가 되어야 농촌목회에 임할 수가 있습니다. 
 
Q. 앞으로의 비전을 말씀해 주십시오. 
A. 저는 양평교회 목회를 교회 밖에서, 3개 마을 120여 가구에 대해 목회를 해 왔고, 그런 비전을 품고 교회 시설에 대해 신축과 리모델링을 했습니다. 아나바다 장터를 교회 안에 만들어서 지역의 젊은 세대들이 교회에 한 번씩은 오도록 권면하고, 예배 후 교제하며 차 한잔 마시는 로비에서 누구나 들어와서 차 한잔 마실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였습니다. 그 결과 마을 이장이나, 시내 교회로 나가는 성도들이 먼저 교회 카페를 통해 문턱을 낮추는데, 동참해 주셨고, 이러한 장소를 계속 오픈한 결과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기 위한 장소로 교회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가 서울에서부터 지속해 오던 사역이 있습니다.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 ‘생명존중 강의’를 지역 학교에 재능기부를 통해 교회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결국 지역사회를 섬기는 문화적 접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바뀌었고, 지역이 변했으며, 성도들이 성장하였습니다. 70~80년대 만 하더라도 농촌교회는 도시교회의 모판이라는 평가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농촌교회는 한국교회의 건강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양평교회가 한국교회와 농촌교회에 변화의 중심되길 바라며, 교회 사역과 맞바꾼 건강의 빠른 회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기독교헤럴드 편집국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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