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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세상(4)희망고문, 카르페 디엠(Carpe Diem)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8.18 15:51
  • 호수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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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연 교수( 숭실대학교 )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다면 바로 내일이라는 희망 때문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희망은 소중한 삶의 일부분이다. 희망이 없다면 아니 내일이라는 희망이 없다면 매 순간 우리는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는 하루 하루를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일 우리에게 희망이 존재한다는 신념은 힘든 하루를 견디어 낼 수 있게 만든다.

고대 그리스는 일찍이 도시 문화의 발달로 그 어느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화려함과 황금기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하지만 알렉산더 이후, 전쟁에 패배한 그리스인들은 주변국의 잦은 전쟁의 시달림으로 하루 하루를 힘들게 보냈다.

당시 사람들은 주변 열강의 침입으로 화려한 도시는 파괴되고 전성기를 누리던 황금기는 어두운 구름으로 가득찬 시기를 보내야 했다. 그리스인들은 화려함의 빛에서 어둡고 칙칙한 긴 터널의 시간을 보내면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서 희망이라는 가치는 상실되고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라는 믿음을 더 이상 가질 수 없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내일은 없고 ‘지금 이 순간’만 존재했었다. 언제 전쟁으로 또 다시 도시가 파괴되고 삶의 터전을 잃을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내일은 더 이상 없었다. 단지 오늘 이 순간의 여유와 평온함만을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등장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이 바로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카르페 디엠, 즉 ‘현재를 즐겨라’는 의미이다. 이 말에는 ‘내일은 없으니’, 지금 당장 이 순간을 즐겨라는 것이다. 하루를 멀다하고 전쟁과 폐허로 가득한 세상에서 희망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현재 이 순간, 잠시의 쾌락과 즐거움에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한다는 생각은 너무 당연해 보였다. 누가 이러한 힘든 시기에 ‘희망을 가져라’라고 외칠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에서 언제부터인가 ‘희망고문’이라는 단어가 회자되고 있었다. 희망고문은 거짓된 희망을 제시하면서 마치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주는 것을 말한다. 희망적인 말로 상대방에게 거짓 기대감을 더해서 고문하는 형태를 희망고문이라고 말한다. 그리스 시대의 사람들처럼 오늘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일이라는 희망은 없다고들 이야기한다. 마치 사람들은 희망고문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 사회의 어두운 명암을 보여주는 단어 ‘희망고문’은 암울한 우리 시대의 얼굴이 되고 말았다. 치열한 경쟁 사회와 노력으로서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에 너무 힘든 사회 속에서 젊은 청년들과 미래 세대들은 점점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희망보다 포기라는 단어를 수첩에 적어두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희망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는 어느 정도일까? 현대인들은 지금 당장 “당신은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들의 자화상은 그리 밝지 않다.

우리는 이 사회의 어두운 얼굴을 잠시 보았다. 희망보다는 절망에 익숙한 세대와 희망보다 절망이라는 단어를 먼저 배우는 세대들에게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아무리 칠흑같은 어두움이라고 해도 자그마한 촛불을 감출 수 없다. 빛이 들어가는 곳에는 어두움이 물러가고 어두움은 결코 빛을 삼킬 수 없다.

희망도 마찬가지이다. 이 시대가 아무리 희망고문이라는 단어에 익숙해 있더라도 어둠의 절망은 결코 자그마한 희망의 불빛을 삼킬 수 없다. 촛불처럼 연약한 불빛이라도 어두운 곳에서는 밝게 빛나는 것이 진리인 것처럼 우리는 어두운 세상에서 밝게 빛나는 진리의 빛이 되어야 한다.

어두움에서 빛이 더욱 밝게 보이는 것처럼 희망고문이 자리 잡고 있는 세상에 우리는 밝게 빛나는 빛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주위에 지쳐있는 젊은 세대들에게 용기와 기운을 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부터 당장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희망고문, 뼈아픈 시대의 자화상처럼 들리는 익숙한 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주는 소중한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희망, 예수님이 세상의 빛으로 오셔서 어두움을 밝게 비추셨던 것처럼, 우리 자신이 세상에서 희망의 전도사가 되고 사회에서 밝게 빛나는 한 줄기 희망의 빛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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