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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세상 (1)수저계급론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2.07.14 17:25
  • 호수 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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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연 교수( 숭실대학교 )

어른들에게 “숟가락 젓가락만 가지고 결혼했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 삶의 모습을 한 문장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보릿고개 시절, 가난하고 힘든 시기에 기성세대들의 녹녹치 않는 삶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부모님들이 “그 때는 다 그렇게 살았다”고 하는 말을 듣게 되면, 기성 세대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짐작이 갈만도 하다.

  스푼이나 서양식 포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식사를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생활용품이다. 물론 수저를 사용하지 않는 문화권에서는 일상 생활용품이 아닐 수 있지만, 먹고사는 문제에서 수저는 정말 소중한 도구임은 분명해 보인다. 수저의 상징적 의미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도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스푼은 앵글로 색슨족이 먹을 것을 입으로 가져가기 위해 처음에 나무토막으로 사용된 것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어 졌다고 전해져 온다. 우리가 짐작하기에 스푼이 없을 때는 아주 오래 전 사람들은 수저를 대신해서 고동이나 조개껍질 등 동그랗게 파인 도구를 사용했을 것이다. 심지어 나뭇잎을 말아서 물을 받아먹으면서 생활해 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서양의 속담에는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다”는 말이 구전으로 전해져 온다. 그 의미는 넉넉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데, 흔히 영어로 쓰이는 표현으로는 “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라고 사용된다. 어쩌면 수저라는 함의가 유복하고 가정형편이 넉넉해서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 도구로서 사용된 것에 대해서는 동서양의 경계가 없어 보인다. 비록 도구적인 의미이지만 수저는 분명 생계의 지표라고 봐도 전혀 손색이 없다.

수저는 동양권 문화에서도 생계와 직결되는 도구이다. 특히 숟가락과 젓가락을 동시에 사용하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문화권에서는 수저가 지닌 함의는 남다르다. 그래서 수저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은 우리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한국 사회에서 빈부격차는 가장 골치 아픈 사회적 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수저계급론’이라는 말이 뉴스의 메인으로 자리 잡은 적이 있었다. 말 그대로 타고난 부모의 배경이나 자산에 따라 계급이 정해진다는 안타까운 신조어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는 금수저인가 아니면 은수저인가?”라고 하는 말을 내뱉기 시작한다. 때로는 “나는 흙수저로 태어났다”라는 말로 스스로를 평가절하 한다.

나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보이지 않는 서열을 정하는 우리 사회는 과연 이대로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도대체 왜 이런 말들이 우리 사회를 어둡게 만들고 있을까?

  계급 사회는 저 멀리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Platon)은 계급 사회를 제시했다. 그는 통치자, 보조자, 생산자 계급으로 나누는 사회를 구상했다. 그는 각자의 계급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회를 동경하면서 계급 사회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계급 사회에서는 신분 이동이 불가능하고 각자의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는 사회 구조였다. 자기에게 주어진 그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그 당시에는 덕으로 간주되었던 시절이었다.

고대 시대의 신분사회는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수저계급론 사회로 등장하게 되었다. 어떻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계급이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게 위와 아래를 구분하려는 사회적 심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사회에서나 빈부 격차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 차이로 인한 차별과 서열화 구조는 눈시울을 찌푸리게 만든다. 언제 부터인가 이 사회에서 자산이나 사는 곳에 따라 서열을 정하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초등학교 학생들은 어디에 사는지,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지의 여부에 따라 차별이 생기는 부동산 계급 사회의 그늘 아래에 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심지어 채용할 때,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라는 기사를 보면서 여전히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들의 삶을 좌우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다시금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지금 우리들은 한국 사회에서 신계급사회의 단면을 엿보고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플라톤이 그려왔던 계급 사회는 다시 우리 사회에서 신계급사회로 재소환되고 있다. 살고 있는 아파트와 자동차, 자산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신계급 사회에서 우리는 여러 신조어들을 낳고 있다. 부모찬스, N포 세대, 캥거루족 등 다양한 신조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태어나고 있다.

수저계급론은 단순히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구분되는 사회 현상을 넘어서고 있다. 그 세상을 돋보기로 하나씩 들여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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