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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50)초추단상 初秋斷想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9.23 17:10
  • 호수 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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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영 작가

(본지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포도순절(葡萄旬節)입니다. 포도가 익어가는 시간을 지칭하지만 어찌 포도 뿐이겠습니까, 생명을 이어가는 모든 곡식이 익어가는 것을요. 포도순절은 백로ㅡ흰이슬 내리는 시간ㅡ부터 추석까지를 말합니다. 그 시절을 옛사람들은 다시 삼후로 나누어 초후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중후에는 제비가 돌아가며, 말후에는 뭇 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구분했습니다. 이슬은 바람이 약하거나 불지 않는 맑은 날 밤에 생성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고요하고 고요할 때 생긴다는 거겠지요. 천하가 태평하면 단 감로....가 내리기도 했다는데 어쩐지 옛날의 이런 이야기들은 자연의 신비에 기대어 사는 선한 사람의 심성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자연을 바라보며 세월을 생각했던 옛사람들은 지금의 우리처럼 탐욕스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친정아버지 추모예배를 드렸습니다. 벌써 십수 년이 흘러갔지만, 기억은 오히려 더 깊어집니다. 당신께서 손수 만들어놓으신 자리로 좌정하실 때 가족묘 주변으로 심어놓은 탱자나무에서 탱자가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었지요. 땅속으로 들어가시는 아버지를 바라볼 수가 없어서 노랗게 익어가는 탱자를 멍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을요. 이상하지요.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도 있는 아주 짧은 순간이 갈수록 선명해집니다. 

아버지 병원에서 퇴원하신 후 우리 형제 자매들이 다 모였던 어느 날이었어요. 아버지는 방에서 주무시다 깨시다를 반복하고 계셨지요. 많이 아파하시지 않으셔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요. 무슨 이야긴지는 기억도 없는데 거실에서 우리는 함께 웃었어요. 생과 사를 넘나드는 아버지께서 문 하나 사이에 두고 계시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소리를 내 웃었을까요. 우리는 동시적으로 같은 생각을 했고 입을 다물었지요. 그렇다고 이미 아버지 귀로 들어간 웃음소리조차 회수할 수는 없었지요. 세상에, 우리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올 그때, 아버지는 얼마나 쓸쓸하셨을까요, 이미 다른 생을 살고 있구나. 나 세상을 떠나도 너희들은 그렇게 웃으면서 살겠지. 몸의 아픔보다 그 쓸쓸함이 더 아프시지 않았을까요. 

아버지 계시지 않는 옛집 뜨락에는 무화과나무 열매가 살이 차오르며 익어갈 것이고 장독대 아래쪽에서는 과꽃과 달리아가 피어서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있겠지요. 지붕 뒤쪽 펼쳐지는 하늘은 쪽빛으로 푸르게 푸르게 변해가고 있을 거예요. 웃음소리에도 그렇게 쓸쓸함이 고일 수 있다는 생각은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내 안에 자리를 키워나가며 모든 익숙한 개념에 대해 사유하게 하곤 합니다.

돌과 모래로 만들어진 정원을 나오시마 섬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꽤나 넓은 마당이었는데 모래와 자갈이 평평하게 마치 잔디처럼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자그마한 돌이 몇 개 놓여 있더군요. 나중에서야 알았어요. 그게 바로 석정石庭이라는 일본식 정원이란 것을요. 일본 말로는 카레산스枯山水라고 하는데 마른 산과 마른 물을 의미하며 없어도 만족한다는 인생관을 나타낸다고 하더군요. 설명을 들으면서 오히려 푸나무 없는 정원으로 더 풍성한 상상을 할 수도 있겠구나. 돌 몇 개로 위치를 바꿔가며 고요한 변화를 꾀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최근에 읽은 어떤 책에 이 석정이 일본의 와비사비 정신을 높게 보여준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와비사비는 단순하고 소박하고 오래된 것들이 가치 있다는 생각이라고 합니다. 가끔 일본에 대한 이런 글을 읽을 때면 그들의 문화 속에 어찌 저리 흉내 내기 어려운 고요하고 고급한 문화적 사고가 가득할까 부럽습니다. 우리는 단순한 삶을 벗어나기 위하여 남을 밟으면서 까지 노력하고 소박한 삶은 가치 없다고 여기며 오래된 것들은 거침없이 부숴버리는 시간 속에 살고 있는데요.

사막에서는 이슬은 강우가 되기도 하고 이슬은 하나님의 은혜요 복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굳이 호세아서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막에서의 이슬은 생명의 근원이기도 하겠지요. 오늘 밤에도 흰 이슬이 내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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