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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45)개망초 戀歌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7.22 15:40
  • 호수 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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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영 작가(본지논설위원)


 해가 저물 무렵 나뭇잎들은 어둠의 빛을 슬며시 몸에 지니면서 짙어진다. 문득 궁금해진다. 햇살보다 어둠은 더 무거울까, 짙음은 무거움일까, 그래서 해 저물 무렵 나뭇잎들은 낮보다 더 침잠에 빠져 보이는 걸까, 아직 거리의 가로등이 켜지기 전 어둠의 기운이 살짝 밴 나뭇잎들은 낮과는 분명 다르다. 그들도 사람처럼 밤이 선생일지도 모른다. 어둠이 깊어지고 밤이 되면 조용한 사위 가운데서 풀 자신의 생에 대해 생각할지도 모른다.
 거의 날마다 걷는 기찻길 옆 산책로에 개망초가 가득가득 피어난다. 워낙 많아서 오래오래 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피고 지고다. 개망초는 북아메리카산이다. 가난한 나라를 돕는 외국 곡식 속에 묻혀왔다는 설도 있고 1897년 경인선 철도를 만들 때 침목에 따라와서 기찻길 옆에서 만발했다는 설도 있다. 조선 왕조가 와해될 무렵이어서 망국초 망초라고 했다는 말도 있지만, 농부에겐 원수 같은 풀이어서 망초 개망초라는 설도 있다. 얼마나 생명력이 가득하면 망할 풀에 개까지 넣었을까,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이제는 외래종이라는 단어가 무색하리만치 우리 산야의 식물이 되어 고향의 정취를 아련하게 자아내는 풀이 되었다. 도시에는 땅이 없다. 하다못해 산책로도 가공된 폐타이어가 땅을 덮고 있다. 폭신거리고 먼지도 없고 땅이 쓸리거나 망가지지 않을 것이다. 편리하지만 가끔 도시의 땅이 호흡곤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땅이 살아있다는 것은 그 무수한 생명을 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죽은 것이 새로운 생명을 내어줄 수는 없다. 그러니 대지는 살아있고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명줄이다. 그런 땅이 숨을 쉬어야 하는데 호흡은커녕 도시의 땅은 무거운 짐을 가득 진 채 침몰해 가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 도시에서 개망초는 무심하게 피어난다. 씨를 뿌리거나 가꾸지 않아도 저 혼자 피어나서 여름의 정한을 수놓는다. 풀이지만 키가 제법 크다. 꽃송이도 많고 큰 키 위로 피어나기 때문에 꽃들과 꽃대 사이에 여백이 펼쳐진다. 해 저물 무렵이면 하얀 개망초는 더욱 눈부셔진다. 개망초는 새들의 보금자리 역할도 한다고 했는데 정말 참새들이 나무 위에서 휘익 개망초 꽃들로 내려와 앉기도 한다. 무거워~ 꽃대는 소리 지르듯 휙 꺽였다가 다시 자리를 잡는다. 도심 어디에서 이런 자연스러운 광경을 대할 수 있으랴, 개망초 위에 앉은 참새를 가만히 바라보니 참새가 쉬지 않고 소리를? 울음을? 웃음을? 짝을 부르는? 소리를 낸다. 혹시 공간에는 소리가 차 있고 그 공간에 길이 생길 때 소리가 다가오는 게 아닌가, 참새는 저 입술로 공간 속에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이데거는 존재를 비본질적 존재와 본질적 존재로 나누었다. 대다수 사람이 비본질적 행위로 인생의 태반을 채워가고 있지만, 본질적 존재는 오직 죽음 앞에서 혹은 죽음을 생각하는 가운데서 본질적 존재가 된다고 했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 앞에 서서야 자기를 위한 존재(사물)들로 여겼던 아내와 딸을 그들의 존재로 인식하며 사랑하게 된다. 그 사랑으로 자신에게 다가온, 즉 죽음 앞의 허무도 이기게 된다. 대개의 사람은 타인의 죽음을 보며 자신은 죽지 않았다고, 죽은 것은 그라며 죽음에서 도피하지만, 죽음을 자각하며 죽음을 향하여 가는 발걸음을 하이데거는 ‘선구’라고 칭하며 존재를 설명했다. 본질적 존재는 불안의 시간이지만 세상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그때가 자신의 존재를 직면할 때라는 것. 그의 ‘존재와 시간’을 읽으며 시간에 대한 개념은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존재에 대한 개념은 안개처럼 다가왔다. 가령 그는 소소한 것들이 지닌 존재에 대해 놀라움을 ‘경이’라고 했는데 ‘경이’를 느끼는 것도 본질적인 삶을 사는 거라고 했다.
 해저물 무렵 개망초 주변으로 살짝 어둠이 깃들면 개망초 하얀 꽃은 그 어둠을 배경으로 더욱 환해진다.
경이로운 개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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