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0.10.26 월 01:34
상단여백
HOME 신학 조직신학
섬기는 자로서의 나사렛 예수(IV)IX. 예수 섬김 정신의 신학적 원천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상임대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IX. 예수 섬김 정신의 신학적 원천

 

2. 하나님 사랑의 화신(化身) 나사렛 예수

1) 사랑의 모범을 보여 주심

예수는 이 세상을 섬김을 통하여 하나님 사랑의 모범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셨다.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 사도 요한은 이러한 예수의 하나님 사랑 설교를 다음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은 그가 창조하신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비록 이 세상이 하나님을 거역한다 할찌라도 이 세상을 구속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어 주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자기 비움의 사랑(the kenotic love)은 하나님의 존재를 구성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적-인간적 자기 주심(divine-human self-giving)을 통해 표현되어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악을 이기고, 구원을 수행하신다. 우주와 역사를 존재하도록 하는 기본원리는 단지 사랑이라는 자연의 낭만적 원리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하나님의 사랑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위한 하나님의 자기 주심이요, 자기 아들의 주심이다. 예수는 성자로서 자원하여 인간의 대속을 위하여 인간의 몸(처녀 마리아)으로 자기 자신을 제한하셔서 하나님의 겸허를 보여주신 것이다. 역사적 예수의 섬김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근저에 깔려 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주심이란 아버지가 바로 자기 자신을 주심이기 때문이다.

 우주와 역사와 인생에 의미가 있는 것은 그것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근저에 하나님의 사랑이 원리로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보이기에는 역사와 우주와 인생이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부조리(사고와 재난과 질병과 이별과 슬픔과 고통)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고 모든 것이 우연이고 덧 없음 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무의미와 덧 없음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래서 역사와 우주와 자연에는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이란 덧 없이 보이는 우주와 역사와 인생의 의미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주와 역사와 인생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고 있다. 그것은 우주와 역사와 인생의 구속(救贖)이다.

 

2) 사랑의 계명을 주심

  사랑의 모범이 되신 예수는 제자들에게 오늘날 우리들에게 사랑의 새 계명을 주신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5).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단지 신앙고백이나 교리적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차원에서 끝나서는 안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제자된 동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웃을 섬기는 것이다. 조건없이 사랑하며 조건없이 섬기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본래는 우뢰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만큼 성격이 급하고 주를 영접하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불을 내리기를 요구한 자였다. 누가는 이 사실을 다음같이 기록하고 있다: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 9:54). 그는 본래 성격이 급하고 투쟁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든 그가 예수를 만나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 그의 성품이 차츰 변화하게 되었고, 예수의 사랑을 받은 제자로서 온유의 사람이 된다. 그는 예수의 사랑 정신을 받아 사랑의 사도가 된다. 그래서 요한은 성품으로 성화를 이루어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가 되어 그의 서신에서 형제 사랑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예수에 대한 사도 요한의 진정한 신앙이 성령의 열매(성화)를 맺은 것이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4-16). 사도 요한은 예수의 새 사랑 개념을 가장 실천적으로 구현한 제자이다.

  그는 사랑의 원천을 알고 하나님의 본성을 알며, 예수 십자가 죽으심의 위대한 비밀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아는 자로서 제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 위에서 실천하는 것이라고 증언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7-10).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 제물이 되신 예수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며, 이것이야 말로 섬김의 극치인 것이다. 아가페의 사랑만이 무조건적 섬김을 이행할 수 있게 한다.

김광연  angel@cherald.co.kr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김광연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