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하면서도 아름답고 단순하면서도 신비로운 그림

현대는 환상이 사라진 시대죠. 환상의 건기 시대. <너희 노인들은 꿈을 꾸고 너희 청년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요엘 2:28> 성경에는 이렇게 선명한 환상이 있는데 말이죠. 삼십 여 년 전 외할머니 박이님 권사님이 소천 하셨어요. 키도 작고 아주 마른 체형의 어른이셨죠. 마당에 넓은 차일을 치고 입관예배를 드렸어요. 목사님이 기도를 인도하시는데...차일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할머니가 우리들 위로 떠 계신 거예요. 하얀 옷을 갈아입으시고...마치 구름처럼 말이죠. 아 할머니....할머니께서는 천국에 가셨구나. 그 때 그 짧은 순간의 환상은 천국에 대한 확신이었고 나만의 부르심이었어요.
 ‘설교 후의 환상’이란 고갱의 그림입니다. 작년 여름 덕수궁에 있는 국립현대 미술관에서 고갱 전시회가 있었어요. 우리나라 전시회 역사상 전무후무한 보험료를 들인 전시였죠. 소문에 걸맞게 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고갱의 유명한 그림이 거의 망라되어 있더군요. 고갱이 그린 타히티 풍경들에서는 그의 염원이 보였어요. 예술을 지극히 단순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원시예술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형태는 단순화되어지고 색상 너머의 사유를 그린, 그리하여 추상적인 느낌조차 있는 그림들, 전시커미셔너의 글에서 왜 고갱인가....묻는다면 그가 마지막 인상주의자...이기 때문에...인상주의 시대를 마감한 최초의 근대 화가이기 때문에...라고 적고 있더군요.
특별히 ‘설교 후의 환상’ 앞에서 오래오래  서있었어요. 강렬하면서도 아름답고 단순하면서도 신비로웠어요. 브르타뉴 지방의 여인들이에요. 민속복장을 하고 있네요. 고갱은 한 화면 위에  매우 현실적인 여인들과 오래전 성경 속 인물 야곱과 그와 싸웠던 영적인 존재 천사까지 거침없이 불러왔어요. 전통적 원근법은 무시되었고요. 지평선도 공중도 보이지 않네요. 어느 한 시점에서 보는 통일적 공간 구성도 파괴되었어요. 강력한 저 빨강색이라니요. 비스듬하게 뻗은 나무(사과나무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는 현실과 환상을 나뉘어 주고 있어요. 이 작품을 계기로 고갱의 화풍은 확실히 달라졌다고 해요. 그는 형태를 단순화하고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는 새로운 회화 양식을 선언하게 되죠. 인상주의에 결연히 등을 돌린 고갱의 종합주의가 탄생하는 거예요. 브르타뉴 여인들의 모습을 자세히 보세요. 얼핏 보면 구경하는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실제 그녀들은 거의가 다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기도하고 있죠. 기도하는 가운데 환상을 본다는 강력한 메시지죠. 간절한 마음으로 설교를 듣고 다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여인들에게 환상이 나타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닐까요. 그렇다면 표현을 달리해야겠네요. 현대는 환상의 건기가 아니라 간절함의 건기라고.... 간절하십니까.        <행신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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