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범석 목사(청주소명교회)가 2012년도 말씀과 문학(대표 홍문표) 수필문학 신인문학상 수상한데 이어 2013년도 들뫼문학 한국문학정신(대표 박민철) 시문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진 목사의 수상작 수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매우 추운 주일날 아침이었다. 목도리까지 두르고 빠른 걸음으로 교회를 향하여 오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른다. “목사님 같이 가세요.” 초등학교 5학년인 김 집사 아들 병주가 어린이 예배에 오는 중인데 나를 발견하고는 함께 가자고 부른 것이다.
그런데 병주가 오늘은 지금까지 본 일이 없는 털모자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병주야 털모자가 좋아 보이네. 참 따뜻하겠네.” “네 목사님 참 따뜻해요. 목사님 이 모자는요. 김해에 사시는 큰 아버지 목사님께서 사주신 거예요.” 병주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늘어놓으면서 좋아라하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나는 병주가 쓰고 있는 털모자를 보는 순간 초등학교 시절 할아버지께서 사다 주셨던 개털모자가 생각이 났다.
“얘들아 어디들 있느냐? 이리들 와 보거라.” 아우내 장터에서 돌아오신 할아버지께서 부르시는 음성이 들린다. 동생과 나는 꼭 사다 주셨던 달콤한 알사탕이 생각나서 할아버지 하면서 할아버지께로 달려갔다. 그런데 오늘은 알사탕도 사 오셨지만 이상하게 생긴 것 하나를 손에 들고 계셨다. “할아버지 이것은 뭐예요?” “개털 모자란다.” “누구 거예요?” “너 줄려고 할애비가 사왔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고 처음 맞이하는 겨울, 손자가 추위에 고생할 것을 생각하신 할아버지께서 ‘아우내’ 장날 개털로 만든 모자를 사가지고 오신 것이다.
‘아우내’는 3.1만세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유관순 열사의 고향인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을 말한다. ‘아우내’ 장날이면 동쪽과 북쪽 6개 면의 주민들이 너도 나도 장터로 모이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온 장사꾼들과 어울려 큰 시골 장이 서는 곳이다.
어릴 때 어르신들을 따라서 가본 아우내 장터는 넓기도 하고 없는 것 빼 놓고는 다 있다는 말이 생길 만큼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가득했고, 장사꾼들도 많았고 사람들도 많았고 많은 물건이 사고 팔리는 곳이었다.
할아버지는 사가지고 오신 개털 모자를 나의 머리에 씌워 주시며 “한번 써 보겠느냐. 아주 따뜻 할거다.” 하시며, 그 모자를 나에게 씌워 주셨다. 약간 이상한 냄새도 나고 개털의 느낌이 좀 이상하기도 했지만 귀는 물론 얼굴까지 따뜻하게 감싸주는 따뜻한 모자였다.
“어떠냐?” “좋아요 할아버지...” “좋으면 됐다.” 하시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바라보시는 할아버지도 매우 흡족해 하시는 표정이셨다.
그러고 있는 순간에 조용하게 보고만 있던 나보다 3살 아래인 동생이 엉엉 울음보를 터트렸다. 왜 내 것은 안 사왔느냐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서럽게 우는 것이었다. 여러 말로 달래고 모자를 씌워줘 보기도 했지만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다음 장날 사다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고 할머니의 등에 업히고 나서야 동생은 울음을 그쳤다.
요즘 나는 할아버지가 사다 주셨던 개털모자가 많이 생각이 난다. 새벽 찬 바람 가르며 교회로 나올 때 귀와 얼굴을 따뜻하고 포근하게 감싸 주던 할아버지가 사다 주셨던 개털모자가 생각이 난다.
무엇보다도 손자를 추위에 떨지 않게 해주시려고 개털 모자를 사다주신 따뜻하셨던 할아버지의 사랑이 많이 생각이 난다.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 내가 할아버지가 되었다. 나는 이 추운 겨울에 손자 손녀들에게 무엇을 선물하면 좋을까?  따뜻한 개털 모자를 선물을 하면 어떨까?
지난날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가 사다주셨던 따뜻한 개털 모자가 아니, 할아버지의 사랑이 많이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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