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7월 말에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여름의 더위가 시작됐습니다. 여름이면 무척 덥지만, 남한의 여름은 북한에 있을 때처럼 그렇게 못 견디게 무덥지 않습니다.

 

서울은 내가 살던 함흥보다 훨씬 남쪽에 있으니 더 더울텐데 말입니다.

 

생각해보니 그 원인은 단순했습니다. 남한에는 건물이고 지하철이고 가는 곳마다 에어콘이 틀어져 있어서 밖에 잠깐 이동할 때를 제외하고는 정말 시원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곳은 에어컨 바람이 너무 강해 긴 소매 자켓을 가지고 다녀야 할 때도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에어컨을 냉풍기라고 말하긴 하지만 저는 북한에서 한번도 냉풍기를 본적이 없었습니다.

 

남한은 겨울에도 가는 곳 마다 난방시설이 잘 되어 있어 정말 별로 추운 것을 못 느끼죠. 북한에 있을 때는 너무 더우면 물을 길어다 집에서 함지 목욕을 하지 않으면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시냇물에 가서 물을 끼얹는 것이 더위를 피하는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좀 잘사는 집에는 선풍기가 있었지만 전기가 오는 때가 별로 없으니 그걸 한번 써보는 것도 신선놀음입니다.

 

이제 좀 있으면 남한은 본격적인 휴가철입니다. 저는 북한에 있을 때 남몰래 남조선 방송을 매일같이 들었습니다. 듣다가 발각되면 무조건 감옥행이었지만 한번 들으면 또다시 듣지 않고서는 못 견딜 만큼 그렇게 남한 방송은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방송 중에 7월, 8월에는 모두 휴가를 떠난다고 해서 저는 그 상황이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방송이니까 좋은 것만 들려주느라고 거짓말로 하는 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북한의 방송이 맨 날 거짓말 하니, 남한도 역시 그러려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국에 와서 몇 년을 살고 보니 조금씩 휴가 가는 상황이 이해가 되고 휴가철이 돌아오면 나도 이제는 저도 모르게 어디로 갈까 이것저것 따져보기도 하면서 여행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북한에도 남한 못지않게 유명 휴양지가 많습니다. 마전 해수욕장, 원산 송도원 해수욕장은 이름난 명승지입니다. 삼지연, 주을온천, 삼일포 등도 유명합니다.

 

많은 남한사람들은 북한의 백두산, 금강산만 알고 있지만 이보다 훨씬 아름답고 장엄한 산들도 많습니다. 산모양이 너무도 기묘하다는 묘향산, 일곱가지 보물이 난다는 칠보산, 우아한 산악풍치를 자랑하는 구월산 등 아름다운 곳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이런 곳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나뿐 만 아니라 많은 북한사람들은 이런 아름다운 곳에 함부로 가보지 못합니다.

 

남한에 와서 보니 금강산에 갔다 온 남한사람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남한사람으로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잠시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이 있은 1990년대 이전에는 남한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즐거운 해수욕을 하면서 여름한철을 보낸 기억이 있습니다. 내가 살던 곳은 함흥 마전해수욕장과 가까웠습니다. 여행증이 없어도 갈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멀리에는 못가도 그곳만큼은 해마다 여름철이 오면 계란부침이랑 밥이랑 싸가지고 직장사람들이나 친구들과 같이 놀러갔습니다. 놀기는 재미있게 놀았지만 돌아올 때는 타고 올 차가 없어서 60리나 되는 길을 비를 맞으며 걸어온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북한에서 그나마 추억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 있었다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식량난이 심각해지면서 기아와 전염병이 만연했던 1990년대 말부터 북한의 여름은 그야말로 죽음의 여름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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