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탈북 대학생이다(2)

영어를 한국어처럼 줄줄 말하는 대학생들과 나란히 공부하자니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너무도 좋은 교육환경에 방심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좋은데서 공부 못하면 바보지.
이러한 나의 생각은 순간순간 깨여져나갔다. 북한과 너무나도 다른 교육체계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도대체 학점이라는 것은 뭐지? 에이 뿔은 또 어디에 붙은 뿔이야! 신기하고도 어려운 대학생활이 시작되었다.
영어는 역시 제일 어렵다. 겨우 에이 비 씨나 아는 정도에 원서를 보려니 무슨 귀신 도깨비 부르는 소린지 모르겠다. 또 나이가 훨씬 아래인 학우들하고 발표 모임을 하려니 높임 말을 써야 할지 해라를 해야 할지 구분이 안 간다.
강의시간에 어쩌다 아는 것이 있어서 좀 대답하려고 하면 말투가 딱 티가 나니 감히 말할 엄두도 안 난다. 또한 여기 애들은 웬 컴퓨터를 그리 잘하는지! 내가 겨우 검색어 하나 찾아내는 새에 벌써 자료 두 세개를 찾아놓고 배심 좋게 앉아 있다. 중국어는 조금 할 줄 안다고 등한시 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마구잡이 중국어랑 대학 중국어는 벌써 수준이 달랐다.

그렇다. 우리에겐 쉬운 것보다 어려운 것이 훨씬 더 많다. 이제 이 경쟁사회에서 우리가 앞으로 헤쳐나아가야 할 길은 멀고 험난하다.
그렇지만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내가 만약 지금 북한에 있다면? 지금 남한에 있기 때문에 더는 농촌지원전투에 안가도 된다. 더는 성분 때문에 가고 싶은 대학에 못 가는 걱정 안 해도 되고, 까만 벼집 노트에 글을 쓰지 않아도 되고, 손을 불면서 난로에 불을 때지 않아도 되고, 무 배추동원 안 해도 되고, 손달구지에 석탄을 실어날라 찍지 않아도 되고, 통 강냉이 국수를 먹지 않아도 되고, 소금 국을 먹지 않아도 된다.
발이 꽁꽁 언채로 십오리 길을 걸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 내가 만약 지금 북한에 있으면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여기에 생각이 미치면 지금의 하루하루가 정말 감사하다.
물론 남한생활은 또 다른 환경에서의 어려움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들, 탈북대학생들에게는 남한대학생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을 꼭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어려운 환경에 있더라도 구해줄 수 있는 마술등잔과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 탈북 대학생 모임에서 한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구상에 수억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일생에 죽음의 고비를 넘어본 사람들은 많지 않다. 세상에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바로 여러분들은 그러한 귀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 죽음을 각오한 정신이면 무엇을 못하겠는가!
그렇다. 우리 탈북 대학생들은 정말 귀한 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겠다고 나는 다짐했다.
대사관 담장을 뛰어넘을 때, 국경을 넘을 때, 베트남과 라오스, 몽골을 지날 때, 그것을 이겨냈을 때 우리에게 하늘은 보물을 내려준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탈북 대학생들이야 말로 탈북자 들 중에서 가장 희망의 모습일뿐 아니라 남북을 위해서 필요한 가장 귀중한 인재들이 아닐까?
나는 탈북 대학생이다. 탈북 대학생인 것이 나는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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