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는 마음으로 ‘미국 대사관’ 잠입  

다음날 아침도 아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오늘 저녁이면 여기를 떠나야 한다. 마음은 한없이 갈급했다. 그 순간 갑자기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북경에는 한국 대사관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다른 나라 대사관도 가 볼 수 있지 않을까?

다른 탈북자들이 일본 대사관도 들어가고 독일 대사관도 들어가서 성공했다는 것을 나는 이미 뉴스로 들었다. 이제 더는 다른 길은 없었다. 나는 생각 끝에 미국 대사관으로 가기로 했다. 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내가 시도해 볼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오후 늦은 시간에 나는 민박집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미국 대사관으로 향했다. 나는 미국 대사관이 어디 있는지 몰랐으나 택시기사는 목적지까지 잘 태워다 줬다.

대사관 앞이라고 해서 내리니 갑자기 많은 사람들 속에 묻혀버렸다.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냐고 물으니 미국비자를 받으려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는 사람들을 간신히 헤치고 대사관 정문까지 다가갔다.

경비를 서는 군인이 세 넷  서 있었는데 총을 들고 서있는 모습을 보자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혹시 잘못 되서 붙잡히기라도 하면 나는 영락없이 북한으로 끌려가야 한다. 두려운 생각에 나는 한참 동안이나 서서 머뭇거렸다.

그런데 몇 사람이 정문에 다가가더니 별로 몇 마디 하지 않고 바로 대사관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다시 용기를 내고 군인들에게 다가가 대사관에 일을 보러 왔다고 말했다. 신분증을 보자고 해서 나는 내가 몇 년 동안 가지고 있던 중국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시장에서 돈을 주고 만든 가짜 신분증이었다. 그 신분증을 들고 군인은 전화로 몇 마디 물어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수화기를 놓고 나에게 “이런 사람이 예약된 것은 없다고 하는데요?” 하고 되물었다. 그 순간 나는 한발 더 다가가 이 문건이 오늘 중으로 꼭 싸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꼭 들어가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나의 모습이 너무 당당해서였는지 그 군인은 조금 머리를 기웃 거리더니 인제 업무시간이 끝날 때이니 빨리 들어갔다 나오라고 말했다. 갑자기 멍해졌다. 정말 대사관으로 들어가도 된다는 말인지 다시 군인을 쳐다보았으나 그는 또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아, 들어가도 된다! 나는 대사관 안으로 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마음은 쿵쿵 떨렸으나 나는 최대한 진정하려고 애쓰면서 정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정문에서 중간 보초소 까지는 100미터도 더 되는 거 같았다. 나는 중간 보초소에 있는 군인에게 태연하게 다가가 여기 공증처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 군인은 친절하게 오른쪽 건물이라고 손짓하며 가르쳐 줬다.

공증처에 들어가니 짐과 몸 검사를 했다. 갖고 있는 소지품을 다 검사원에게 건네자 내가 갖고 온 서류를 보자고 했다. 나는 한국 대사관에 가지고 가려고 준비해두었던 초청서류를 꺼냈다. 한국 대사관에 가지고 가려고 했던 것이지만 그것은 마침 영어로 되어있었다.

직원이 “아, 이것은 한국에서 보낸 것이 아닌가요?”

아, 정말 그랬다. 그러나 나는 주저하지 않고 한국에 있는 미국 회사에서 보낸 것이라고 대답했다.

직원은 더 묻지 않고 나를 공증처로 들여보내줬다. 다시 공증처에서는 여자 군인이 몸수색을 하고 증명서를 보고 나를 들여보냈다. 공증처에는 사람들이 두 세 명밖에 없었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평온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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