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음력 유월 십칠일, 월력은 입추를 표시하고 있지만 관상감(觀象監)에서는 팔도가 폭염에 쌓여 연일 삼십 사오도를 오르내리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우거사는 예년 같으면 이런 폭염 속에서도 체통을 중시하여 의관정장을 하고서 정자에 앉아 거문고를 타거나 동문수학들을 불러 시조를 읊는 일들로 더위를 식혔을 터였다.

그런데 올해에는 이 더위 보다도 더 열바치는 일이 발생하여 도저히 거문고니 시조니 하는 나부랭이로 체통을 따질 수가 없었다.

“첨벙”

우거사는 속곳 하나만 걸치고 정자 아래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그래도 열기가 식지 않자 종놈을 불러서 얼음골에 고이 저장해 놓은 수박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우직-”

우거사는 수박을 한입에 베어 물고 와작와작 씹으면서 생각했다.

“네 이놈, 권태수, 내가 니를 이렇게 베어 물어 와작와작 씹어 줄테다.”

며칠 전 성골찌라시는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전했다.

태수단은 지난 칠월 스무사흘에 중국집 텐안문(天安門)에서 모임을 갖고 공천부(公薦部)에서 위임한 일부 항존부서 위원과 공제이사를 보선했다. 이날 태수단은 고시위원으로 전병거사, 역사위원으로 안상거사, 법연위원으로 금정거사, 공제이사로 화관(貨慣)거사를 각각 보선했다.’

“속였어, 이 기시키”

우거사의 수박 씹는 소리가 더 요란해졌다. 사실은 분에 못이겨 수박씨를 씹은 것이었다.

우거사만 빠진 것이다. 원래의 합의사항은 해외지사인 경전공사(經典公社)의 이사인 이정거사를 태수의 직권으로 사임시키고 그 자리에 우거사를 영전시켜주기로 했었는데,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우거사의 자리만 쏙 빼버리고 발표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동안 교당을 요모냥 저모냥으로 수년동안 등쳐묵은 화관거사를 하필이면 교당에서 돈이 가장 많이 유통되는 공제이사로 보낸 것도 구린내가 났다.

우거사와 권태수가 합의한 사항은 이름하여 ‘에스카쓰라 이브테프트’ 밀약이였다.

(1905년 일본의 카스라와 미국의 테프트 사이에 맺은 밀약과 에스카토스 이브를 합한 패러디) 이 밀약은 前부태수 박영거사가 주선하여 카스라와 태프트가 그랬듯이 8시간 동안이나 밀고 당기기를 계속한 후 맺어진 참으로 힘겨운 밀약이었다.

강남에 소재한 삼정반점의 밀실에서 이루어진 8시간이나 계속된 이 밀약은 삼성공사에서 생산한 초정밀 돼지털 기록계 ‘옙’ 에 그대로 기록되었다. 독자들은 궁금하겠지만 작가가 이 밀약의 내용을 다 옮길 수는 없고,(내용을 다 청취하는 것은 작가만의 특권 아닌감?) 주요 촬요만 ‘에스카토스 이브’식으로 전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거사 : 야 이 기시키야. 니가 성결노원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떳떳하냐? 나는 자료가 다 있어. 어디 한번 나를 감찰청에 고소해봐. 왜 못해? 그리고 니 이것 시인해, 니 이것 시인 안하면 니 쇠고랑이야, 태수 자리만 그만 둔다고 하면 다 인줄 아냐?

권태수 : 친구야........ 나를 꼭 죽여야만 하겠니? 한번만 봐주라. (약봉지 3개를 주머니에서 꺼내며) 나, 이것 없이는 밤에 잠도 못자.

우거사 : 나는 니가 소환하고 포도청에 넘긴다 해도 잠만 잘 오드라. 니는 나를 죽여놓고 왜 잠을 못자냐?

권태수 : 친구야.........

우거사 : 친구는 무슨 친구? 내가 니 시다바리가? 나는 니보다 나이도 3살이나 적어. 동문수학했다고 다 친군 줄 아냐?

권태수 : 친구야. 제발........교당을 생각해서.......제발 참아주라......내가 니 명예회복 시켜주고...... 해외지사로 영전시켜줄게.

우거사 : 니 말을 어떻게 믿냐? 이제까지 해 온 니 행태로 봐서.....

권태수 : (눈물을 흘리며 두손을 싹싹 비비며)이번엔 달라. 이 문제 해결 안돼면 나 교당 총태수 자리 즉각 사임할게. 믿어줘. 제발........내 총태수의 명예를 걸고 맹세할게........

사실 권태수는 우거사의 증명서찰을 일관되게 무시해 왔었다. 지가 아무리 증명을 해보이라고 우겨대도 안하면 그만 아닌가? 물론 교당 백주년 기념행사를 진행하는 중에 발생한 부패사건의 한가운데 자신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기화로 우거사가 형조에 까지는 가지고 가질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형조에서 그 사건을 다루려면 무시하지 못할 법률비용이 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이 다스리는 대규모 도량인 텐안도량에 비하면 코딱지만한 연희 도량을 다스리는 우거사에게 그러한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재주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자신의 텐안도량보다 그 규모나 예산이 두배가 넘는 신길도량에서 우거사를 적극 지원하기로 도량당회에서 결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윽 - 이제 나는 죽었다.”

권태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거의 실신할 뻔 하였다. 원래 율사들이 대거 동원되는 법률다툼은 다 - 화폐의 힘 다툼이 아닌가? 오죽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회자되겠는가? 신길도량의 대규모 지원이 우거사에게 이루어 진다면 자신은 이젠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왜냐하면 성골노원의 부패 문제의 핵심이 좁혀진다면 당연히 그 결과는 자신과 여성거사에게 돌아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백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교당의 예산을 7억 6천만냥을 들여 성골노원의 부지로 일만오천평의 토지를 구입한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사실은 아직도 유지재단 명의로 등기가 안되어 있는 것이 부패 문제의 핵심이었고 이것은 어떻게 바꾸어볼 도리도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즉 쉽게 말하지면 7억 6천만냥의 돈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권태수는 판단하였다.

“우거사는 이 문제에 대해 타협할 의지가 없으니 이제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은 신길도량측과 직접 쑈부를 보는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신길도량의 실세인 박거사를 만나는 수밖에 없다.”

권태수는 신길도량의 총책인 이신거사에게 급히 만나자는 긴급전통을 넣었다. 이런 결과로 己丑(기축)년 칠월 육일, 「주식회사 SW」의 대표 이사실에서 비밀 회동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회동에는 권태수, 교당본부의 최도필리, 신길도량의 이신거사와 박거사 송거사가 회동했다. 그리고 권태수는 교당의 평화를 강조하며 자신과 우거사의 화해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권태수는 태수자리를 걸고 다음 3가지 약속을 하고 신길도량측에 각서를 써주었다. 이 각서는 권태수가 머리를 짜내어 결론을 낸 미야모또 무사시의 역지사지(易地思之) 검법과 떡 권법의 결정판이었다.

첫째, 우거사에 대한 심판위원회 회부 건은 파기한다.

둘째, 우거사는 해외지사인 경전공사(經典公社)로 영전시킨다.

셋째, 우거사의 소환으로 공석이 된 법통연구위원장직은 현 성골노원(聖骨老院)의 이사로 있는 금정(金正)거사를 영전시킨다.

권태수가 써 준 각서는 신길도량의 송거사가 간수하였다. 그리고 우거사에게는 이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런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쳐 우거사는 권태수가 인간적으로 불쌍하기도 하였지만 그것보다는 교당의 평화를 위해서 ‘에스카쓰라 이브테프트’ 밀약에 합의를 해 준 터였다. 이 합의를 해주면 ‘경전공사 이사 자리 하나 얻어묵고 교당적 부패를 눈감아주느냐’ 하는 비난이 자신에게 쏟아지리라는 것은 예상을 했다.

그러나 그런 비난을 하는 자들은 교당의 부패에 대해서 애써 눈감아 왔던 자들이 아닌가? 우거사는 이런 비난을 감수하기로 했다. 그것은 신길도량측의 권고 때문이기도 했다.

이랬던 권태수가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특히 이정거사가 경전공사의 이사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공천부 결정에서 우거사만 쏙 빼버린 것이었다. 배신을 때린 거였다. 이런 상황에서 우거사도 중대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닌가?

“두고 보자.......이 기시키, 친구 좋아하시네. 그래, 니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었어. 니가 용쓰는 재주가 있어도 나는 자료가 있어......그리고 나도 생각이 있어.......”

드디어 권태수로부터 비롯된 배신(背信)의 계절(季節)이 시작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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