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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179>은행나무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4.05.09 00:31
  • 호수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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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이제는 사라져버린 나의 옛집. 친정집 뜨락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해마다 엄마에게 엄청난 양의 열매를 안겨주었던 다산형의 나무였다. 은행나무를 수형이 아름다운 나무라고 하지만 본가의 나무는 암나무라선지 가지만 주욱죽 벌어져 있는, 시골집 텃밭에 어울리는 평범한 나무였다. 언젠가 마루에 앉아 엄마가 문득 그러셨다. “아야, 저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믄 살째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야, 비 오고 바람 겁나게 부는 날은 저것이 머리 산발하고 달라들 것 같기도 하고, 으짜다가 집 쪽으로 무너지믄 집도 나도 무너질 것 맹키로 무섭고.....”

​ 내가 좋아하는 강화도에 가면 고려궁지를 벗어나 자그마한 소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다. 주위에 옹기종기 서 있는 집들의 지붕조차 한껏 눈 아래로 내려다보듯 제왕처럼 군림하고 있는 팔백 살이 넘은 나무. 오백여 년 가지고는 명함도 못 내민다는 은행나무의 장구한 수명이 켜켜이 아로새겨져 있다. 거대한 몸과 수많은 가지에 무성한 초록 잎을 매달고 있는데 바람이 살짝 불어오니 순간 흔들리는 잎들이 나무의 수많은 눈처럼 여겨지더라는 것, 솜털이 솟구치던 오소소한 느낌이라니, 사람으로 친다면 무한 권력을 지니기 위해 자식도 남편도 손자조차도 거침없이 해하던 늙고 노회한 측천무후 같다고나 할까, 나무라고 하여 순후하고 밝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새로운 인식을 하게 한 나무였다.

​ 순천 낙안 읍성에도 어마어마한 은행나무가 있다.멀리 좀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하늘 아래 홀로 존재하는 것처럼 우렁차고 당당하다.이순신 장군이 낙안을 방문했을 때 많은 주민이 의병에 지원했고 군량미를 내놓았다. 돌아가는 길에 이 은행나무 앞에서 마차의 바퀴가 빠져 잠시 머물게 되었다. 마차를 수리하고 돌아갈 때 수해로 인해 무너진 다리를 보게 되었다. 바퀴가 빠진 시간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은행나무 목신이 자신을 구해주었다고 생각했다는 설화.

​ 국립수목원에서 사람들 별로 다니지 않는 관목원 길을 걷다 보면 두툼한 몸통의 커다란 은행나무 한그루가 나타난다. 유심한 눈빛으로 살피다 보면 나무 몸통 사이로 혹 같은 돌기가 여기저기 솟아나 있다. 이름하여 유주乳柱 ㅡ한자 풀이대로 한다면 젖기둥이란 뜻이다. 나무줄기처럼 보이는 그러나 나무의 줄기와는 반대로 땅을 향하여 솟아난다. 어느 생태학자는 돌기 부분에 솟아나는 나뭇잎이 있다며 줄기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뿌리가 기형적으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필요한 만큼 많은 공기를 뿌리로 흡입할 수 없어 일부러 몸에 만든 뿌리, 그래서 유주를 공기 중에서 숨 쉬는 기근氣根이라고도 한다.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부르는 은행나무는 자신이 지닌 독성으로 인하여 벌레가 없는 나무이다. 빙하시대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은 나무, 불이 나도 잘 타지 않는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나무, 그러면서도 더디기 그지없어 할아버지가 심으면 손자 대나 열매가 열린다는 공손수라는 별호를 지닌 느리고 침착한 나무, 그가 만들어 낸 유주를 바라보며 살아남기 위하여 발상의 전환을 이룬 그 놀라운 창의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 삶이 재미없을 때마다 숲으로 가곤 한다. 눈앞과 땅만 바라보며 살다가 하늘을 보게 되는 곳이 숲이다. 나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을 살아왔을 그러나 여전히 청년처럼 싱싱한 나무 옆에 가만히 서 있어 보라. 햇살을 향한 고달픈 짝사랑이 빚어낸 불균형한 가지를 보며 인내를 사유해보고 새로운 형제를 위해 부러져 나간 자욱을 보며 희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휘면서도 곧고 곧으면서도 자유로워 보이는 우듬지를 아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노라면 나무가 지나온 오랜 시간의 향기가 파동 치듯 느껴져 온다.

​ 자연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쉽고 아름다운 시다. 남의 글도 잘 보며 자신의 글도 잘 쓰는 눈 밝은 평론가가 그랬다. “인생의 어떤 일을 겪으면서, 알던 시도 다시 겪는다고” 그 글을 읽으며 눈이 살짝 밝아져오는 듯 했는데.... 그렇다, 그렇구나. 그렇지만, 시만 그러랴,

오월의 숲은 참으로 눈부시다. 꽃 피어나고 바람 속에 향기가 함께 흐르는 시절, 부활하는 숲을 보면서 어찌 새로운 부활을 꿈꾸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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