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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평론 / 정재우 목사세로의 가출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3.03.29 19:50
  • 호수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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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우 목사(평택성결교회 원로, 가족행복학교 대표)

희한한 뉴스를 접했다. 사람의 자녀가 가출을 하면 뉴스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동물이 집을 가출하면 특종이 된다. 지난 23일 오후 2시 40경 서울어린이대공원 얼룩말 ‘세로’가 가출한 소동이 일어났다. 필자는 세로의 입장에서 일인칭 스케치를 해보았다.

“그날 일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에요. 최근 들어와 내 안에 나도 잘 모르는 이상한 감정이 솟구쳐 올라왔어요. 엄마 ‘루루’가 먼저 우리 곁을 떠나 하늘의 별이 되었을 때만 해도 너무 슬펐지만 아빠 ‘가로’가 있어서 견딜 만했어요. 그런데 아빠마저 엄마를 따라가버렸을 때는 앞이 막막하고 살 기운을 잃을 만큼 슬펐어요. 

올해 들어와 사방에서 봄기운이 일어나자 나는 더 이상해졌어요. 밥도 먹기 싫고 간식도 흥미를 잃었어요. 외롭기도 하고 무언가 답답해서 견디기가 어려워졌어요. 이 우리 안 공간이. 나를 돌봐주는 동물원 직원인 언니가 걱정하며 나를 달랬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나는 어딘가를 끝없이 달려가고 싶어졌어요. 내 꿈에서 처럼. 

그래서 그날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는 강한 힘이 갑자기 솟아나 우리 한 쪽 데크를 뒷발차기로 부숴버리고 가출을 한 거예요. 처음에는 동물원 안에 있는 사람들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한참을 달리다 보니 거리가 보이고 빌딩이 보이고 차들이 많이 보였어요. 사람들도 너무 많이 다니는 걸 보았어요. 사람들의 표정이 어쩐지 어두워 보였어요. 날 보고 놀라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은 깔깔 웃기도 했어요. 나를 쫓아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정말 신났어요. 아빠가 말하던 그 들판을 달릴 때 기분을 알 것 같았어요. 내가 왜 그동안 우울하고 기운이 빠져 있었는지 알 것 같았어요. 그때 그 큰 길, 자동차들이 다니고 오토바이가 자동차들 사이를 신기하게 빠지며 달리는 그 길로 나도 쭉 달렸어야 했는데... 위험한 생각에 골목길로 들어가는 순간 길을 잃고 말았지요.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날아온 주삿바늘에 찔려 기절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걱정스러운 언니 얼굴이 눈에 들어 왔어요. 아마 생생한 꿈을 꾸었나 봐요. 히이힝!” 

세로의 가출이 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까?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 유목민인 우리는 어떤가? 우리도 세로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탈출할 용기를 잃은 체 그냥 덧없이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세로는 울타리 없는 세상을 마음껏 달리며 어떤 기분이었을까?

우리도 때로는 울타리 없는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고 싶다. 최근 아주 가까운 죽마고우 친구 내외는 멀리 남해로 가서 집을 얻어 한 달 살기를 하고 있다고 소식이 왔다. 둘레 길도 걷고 새봄에 피는 꽃들도 보고 바닷가에도 가고 미술관에도 가고 배를 타고 근처의 섬에도 갔다고 영상을 보내왔다. 나름 울타리 밖으로 가출한 재미를 쏠쏠하게 누리나 보다. 그동안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세로의 가출 동기를 동물원 도우미 언니 말로는 삐져있었다고 했다. 마치 중2병에 걸린 아이처럼 매사에 삐져 있다가 가출한 거로 말한다. 동물도 감정이 있고 그 감정을 표현한다는 말이다. 언젠가 가출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있는 단기쉼터에 가보았다. 여자아이들만 기숙하는 곳이었다. 그곳의 직원을 격려하는 회식자리에 가출 소녀들도 같이하며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평범한 보통 아이들 이었다. 단지 집이 더 불안하고 답답해서 가출했다고 한다. 집안 분위기가 달라지면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결국은 가족의 문제였다. 특히 부모의 갈등이 아이를 가출하게 한 것이다. 가족의 화목한 분위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성경에도 가출 이야기가 나온다. 아브라함 집에서 가출을 강요당한 하갈과 아들 이스마엘, 이들이 오늘의 중동 이슬람 조상이 된다. 형제간 갈등으로 가출한 야곱, 그는 이스라엘의 조상이 된다. 가출에서 돌아온 유명한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 그는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인류를 상징한다. 가출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다. 

어떤 유형의 가출이라 하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있다. 가족이라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큰 그림으로 말하자면 무리 지어 살아가야 할 삶의 보금자리이다. 소외받는 자가 없는 어머니 품. 이게 울타리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할 이유이다. 세로는 심리치료를 위해 곧 암컷 친구를 맞이한단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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