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영 목사(제일교회 담임)

이철환 작가의 「연탄길 1」(렌덤하우스 출판)을 읽으며 감동이 되었던 한 대목을 옮겨봅니다.

김씨가 인형 장사를 시작하고 나서 6개월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검게 때가 앉은 와이셔츠 위에 허름한 양복을 입고 있는 그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이 인형 얼마에요?” “신랑 신부 인형이요? 삼천 원인데요, 손님.” “여기 있는 신부의 모습이 꼭 제 아내를 닮아서요.” 그는 봉지에 담긴 인형을 꺼내 양복 바깥 주머니에 넣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김씨가 사내를 다시 본 것은 그로부터 열흘이 지나서였다. 점퍼 차림의 사내는 양손에 가득 짐을 들고 김씨에게 다가왔다. 전과는 달리 그의 얼굴은 매우 밝아 보였다. “안녕하세요. 저 알아보시겠어요?” “그럼요, 저번에 밤늦게 오셨던 분이시잖아요.” “그때 사간 신랑신부 인형을 한 쌍 더 사려고요.” “저는 신랑만 필요하니까 신부는 여기 두고 가도 되겠지요? 사실은 집에 있는 신부 인형이 얼마 전 자기 신랑을 잃어버렸거든요.” 사내는 바닥에 놓았던 보따리 안에서 물건이 담긴 검정색 봉지를 꺼냈다. “이리로 오다가 길에서 과일 좀 샀어요. 별거 아니지만 집에 있는 아이들 갖다 주세요.” “감사의 표시니까 그냥 받아주세요. 인형 많이 파세요.” 사내는 김씨에게 머리 숙여 인사까지 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사내가 주고 간 과일 봉지 안을 살펴보니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

     “나보다 먼저 물속으로 뛰어든 것은 내 주머니 속에 있던 인형이었습니다.”

‘열흘 전, 나는 밤거리에서 당신을 처음 만났습니다. 죽기 위해 미리 봐두었던 한강으로 가는 길에서 당신을 만났던 것입니다. 나는 사업에 번번이 실패했고, 오랫동안 빚쟁이들에게 쫓겨 다녔습니다. 한강에 도착한 것은 새벽 2시간 다 될 무렵이었습니다. 다리의 난간 위로 한 쪽 발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한 쪽 발을 땅에서 땠을 때,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눈을 꼭 감고 뛰어 내리려는 순간, 첨벙하는 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습니다. 두려움에 깊이 찔린 나의 몸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떨어진 곳은 강물이 아니라 다리 위에 콘크리트 바닥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보다 먼저 어떤 물건이 강물로 떨어지며 들려준 작은 소리가 내 의식 속을 송곳처럼 찌르고 지나갔습니다. 나보다 먼저 물속으로 뛰어든 것은 내 주머니 속에 있던 인형이었습니다. 만일 그 인형이 나보다 먼저 떨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강물로 몸을 던졌을 것입니다. 다리 난간에 기대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생각났습니다. 만일 그날 밤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어쩌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당신께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참, 그리고 저도 내일부터 장사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거리에서 양말이라도 팔아보려고 합니다. 저에게 이런 용기와 희망을 주신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참 감동적인 내용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십자가의 죽음에 뛰어 드셨던 주님을 떠올렸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처절하게 기도하셨지만 끝내 죽음으로, 십자가로 가려고 애쓰시고 또 애쓰시는 주님이 교차되었습니다. 그리하지 않으셔도 되셨을 텐데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는 죽음으로, 십자가로만 가시려고 자신을 내 맡기셨던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우리 주님이 먼저 죽음에 뛰어드셨고, 그분이 그리하셨기에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요. 우리 주님이 우리 대신 죽으셨잖아요. 그래서 오늘 삶의 자리가 좀 힘들다고, 이루어야 할 과업들이 너무 무겁다고,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고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기억하십시다. 주님께서 우리의 삶으로 들어오셨고 먼저 죽음에 뛰어드셔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더욱 힘을 냅시다.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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