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영(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화분을 좀 키웁니다. 칠팔십 개 되려나요. 커다란 화분 하나가 작은 화분 열 개보다 클 수 있으니 개수는 별 의미가 없지만요. 식탁 위에서 키우는 작은 화분이 전부인 딸래미가 정글 같다고 하더군요. 가끔 어떻게 이리 잘 키우냐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땐 내심 좀 민망하죠. 사실 키우고 싶어서 사는 화분들을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요. 특히 허브 종류는 몇 번이나 실패했어요. 과습인 듯해서 물을 적게 주어도 결국 죽더군요. 햇빛이 문젠가 싶어서 햇살 비치는 쪽으로 자리를 잡아줘도 죽길래 이젠 허브에게 마음을 주지 않아요. 땅에 대한 사랑이 좀 유별난 듯 했어요. 천리향으로도 불리는 서향은 그 고급진 향기가 정말 매혹적이에요. 아 옛날 우리 집에는 정말 오래 산 서향나무가 있었는데 얼마나 향기가 사람의 마음을 아득하게 만들던지...이상하지요, 사십여 년 전의 향기가 여전히 기억난다는 게 말이죠. 추억으로 꽃을 사기도 하죠. 꽃몽우리가 어여쁘게 맺혀서 잘 들여다보는데도 시심사심 죽더군요. 세 번쯤 실패하니 '너와는 인연이 아닌가 봐,' 이른 봄 화원에 가면 몽우리 맺힌 서향 앞에서 서성이지만, 그냥 돌아섭니다. 벼가 농부의 발소리를 들으며 큰다고는 하지만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란 것을 경험했습니다. 꽃치자는 진딧물 때문에 한데 두다가 두 번 얼어 죽었어요. 진딧물과 경쟁하기 싫어서 마음을 접은 거예요.

그러니 우리 집 식물은 대부분이 혼자서 자립하고 자생하는 생명력 강한 종들입니다. 더군다나 최근 몇 년에는 주로 물꽃이를 해서 번식하는 재미를 좀 봤어요. 특히 고무나무, 새순 나고 자라나 반짝반짝 이파리에 윤기 나면 적당한 가지를 하나 꺾어 물에 담가놓죠. 무더운 여름날 한 며칠이면 도톰도톰 하얗게 줄기에 순이 솟아나요. 가을 되기 전에 화분에 심으면 백발 백중 그래서 고무나무 화분이 많습니다. 분양도 몇 그루 했구요. 괴목 행운목은 살짝 징그러울 때도 있어요. 키가 해마다 자라나는데, 요 몇 년 계속 청년긴가 봐요. 스파티필름은 정말 무성해서 공기정화를 잘 시켜줄 것 같고 시원한 이파리가 매력적인 몬스테라는 잘 자라나기도 하고 공중 뿌리랑 함께 잘라 심으면 금방 새 생명을 솟아나게 해요. 신기하게도 이파리가 자라나면서 구멍이 뚫리거나 잎이 자연스레 벌어져요. ‘내 잎이 너무 커서 너희들한테 햇살이 못가는구나. 미안해, 대신 내가 이렇게 몸을 열어 줄테니 그 사이로 햇빛을 쐬렴!’ 다른 잎들을 위한 놀라운 배려이지요. 금전수는 가만두니 너무 무성해서 포기를 나눴더니 일이 년 몸살을 앓더군요. 나눠준 이도 나누어진 이들도 서로를 그리워해선지 도무지 생에 대한 의욕이 없더라구요. 뿌리를 나누는 것은 가지 하나 떼 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요즈음 알보몬스테라는 이파리 하나에도 몇십만 원을 하고 좀 멋지다 싶으면 몇백만 원도 훌쩍 넘어서 식테크라는 기이한 단어도 만들어냈어요. 사실 몬스테라 알보는 엽록소가 결핍되거나 표피세포가 변형된 돌연변이종이에요. 일종의 기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열광하는 걸까요. 시선 확장이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보 몬스테라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조금씩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사랑의 시선을 보내주라는.....

식물을 키우면서 생각하게 되죠. 식물들은 우리의 마음 같은 것은 아무 관심 없이 그저 자신의 길을 아주 열심히 가고 있다는 것요. 향기도 짝사랑하는 사람처럼 혼자 좋아하지만 나 좋아하라고 향기를 지니겠어요? 찢잎 앞에서 내가 하는 이야기를 몬스테라가 들을 수 있어 듣는다면 웃긴다고 할지도 모르죠. 혹시 알보몬스테라가 명징한 의식이 있다면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 할 수도 있구요. 진딧물도 주어진 자신의 길을 가는데 니가 왜? 나를 손가락질 할 수도 있어요. 멈춤을 잘하는 성격이라 이제 더 화분을 사지는 않습니다. 그냥 화원에 가면 사고 싶은 식물 앞에서 가만히 들여다보곤 하죠. 여전히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굳이 내 것으로 삼지 않아도 잘 살아갈 테니까요.

입춘에 보리 뿌리를 살펴보며 풍년을 예측했다더군요. 뿌리가 근원이긴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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