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연 교수 ( 숭실대학교)

고대 그리스 시대에 등장했던 다양한 사상들 가운데 하나는 목적론이었다. 목적론은 세계 내에서 발생되는 모든 사건들이 일련의 목적과 관련되어 발생된다고 말하는 원리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인간의 행동을 넘어서서 전 세계적인 사건이나 역사적 사건 또는 자연의 현상들도 어떤 목적에 의해 작동되는 원리이다.

목적론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시기에 자연의 다양한 현상들도 목적론적 의미를 부여한 경우가 허다했다. 당시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목적은 분명 존재했다. 동시에 맑은 하늘 아래 태양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것 또한 목적이 있어서였다.

하늘은 대지(大地)를 적시기 위해 비를 내리고, 습기가 가득하여 축축한 공기를 건조하기 위해 태양은 부지런히 자신의 뜨거운 햇살을 비추고 있었다. 이러한 자연의 목적으로 인해 인간 삶의 양식은 자연의 흐름과 목적에 따라 삶을 만들어갔다. 과거 사람들은 비가 오는 날이면 그 물을 받기 위해 그릇을 준비해서 식수로 사용했다. 해가 강렬하게 쬐면 건조할 것들을 마당에 펼쳐놓고 한 겨울을 대비해서 일용할 양식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처럼 자연은 거대한 섭리 안에서 일련의 질서와 순서대로 맑은 날씨와 촉촉한 비를 재촉 하면서 질서 있게 운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러한 섭리를 목적론으로 해석하며 자연과 함께 공존을 거듭해왔다. 때를 따라 내려주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는 자연에서 그대로 반영되었다. 하나님은 자연의 섭리를 통해 인류에게 따뜻함과 먹을 수 있는 생수까지 공급하셨다. 자연은 창조주의 섭리에 의해 때를 따라 비를 내려 거대한 생태계가 돌아갈 수 있게 했다. 그 어느 누구하나 간섭이 필요 없이 자연은 스스로 비와 눈을 내리고 바람을 불게 해서 공기를 정화시키고 바다의 순환을 도왔다. 이처럼 자연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운행하고 있었다.

자연의 목적은 분명했다. 모든 생명체들이 질서 있게 순환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장소를 제공해 주는 것이었다. 자연은 모든 생명의 순환을 돕고 나름의 합목적성(合目的性)을 가지고 있었다. 합목적성의 사전적 정의는 사물을 포함한 어떤 살아있는 존재가 일정한 목적에 맞게 적합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형태 또는 성품을 말한다. 어떤 한 부분이 전체에 맞게 부합되고 동시에 전체는 각각의 목적에 따라 한 부분이 잘 순환할 수 있도록 존재한다. 전체는 각각의 목적을 위해 일한다. 자연이 바로 모든 생명체의 순환과 삶을 이어갈 수 있게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 과학의 발달은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변화를 예고했다. 비가 내려서 땅이 촉촉하게 젖어 생태계의 순환을 돕는 목적론적 해석은 이제 더 이상 우리들 인식의 변화를 따라오지 못했다. 과학의 발달은 기존의 세계관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근대 과학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자연의 목적론적 설명보다는 비가 내리는 과정을 기술적으로 알게 되었다. 모두 다 알다시피, 비는 대기 중에 물방울이 서로 붙으면서 그 무게로 인해 아래로 떨어지는 현상이다. 오늘날 지식을 습득한 현대인들에게 비가 내리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면 당연히 과학적 설명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할 것이다. 이처럼 과학기술은 목적론적 세계관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기술은 모든 현상을 물질 운동의 과정으로 설명하려는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변화시켜 놓았다. 과학기술의 엄청난 힘은 서서히 목적론적이고 추상적 세계관의 시계 바늘을 거꾸로 가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론적 세계관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세계관이 서서히 수면위로 다시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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