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연 교수(숭실대학교)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간의 삶이 유한한 것은 지극히 자연적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삶의 유한성은 또 다른 무언가를 발견하게 해 준다. 바로 유한성 뒤에 수반되는 영원한 시간의 무한성이다. 인간은 죽음의 실존에서 또 다른 삶의 여정을 준비하면서 유한한 생애를 반성하고 또 회고하는 존재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실존은 3단계, 즉 미적 존재, 윤리적 존재, 종교적 존재를 경험한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은 ‘좋음’ 그리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존재로서 처음으로 미적 단계를 경험한다고 말한다. 그 다음 인간은 미적 단계를 거쳐 ‘옳음’의 단계인 윤리적 단계를 거친다. 인간은 좋음의 유아기적 단계를 지나고, 보다 더 윤리적인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좋음의 단계보다 성숙한 옳음의 단계에서 인간은 공동선(common good)까지 나아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미적이고 윤리적 단계를 거쳐 마지막 실존의 단계를 남겨둔다. 바로 죽음이라는 긴 터널이다. 모든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이 죽음의 단계에서 인간은 종교적 경험을 하게 된다. 종교적 실존에서 인간은 죽음의 한계를 경험하고 그 공포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신을 요청한다. 바로 종교적 실존은 내세에 대한 또 다른 경험과 맞물려 있다. 신의 요청, 유한한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선택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종교적 실존에서 우리는 죽음 이후의 실존 즉 내세에 대한 삶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죽음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한다. 유한한 인간 생명의 연장은 모든 사람들의 소망이다. 그 소망이 점점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과거와 달리 엄청 연장되었다. 하지만 아직 영생의 단계에 이르지는 못한다. 그러나 죽음을 극복하는 영생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모든 자연의 생명은 태어나서 생을 마감한다. 들에 있는 풀도 하늘에 나는 새도 조용히 왔다가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미래 어느 순간, 인간은 죽음의 실존을 극복하고 영생의 존재가 되려한다. 하나님이 계획한 창조 세계는 생과 사의 길이 하나로 놓여 있다. 모든 생명체는 삶과 죽음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그 어느 생명체도 죽음의 터널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인간에게만 죽음이라는 공포와 무서움을 이겨낼 수 있는 종교적 실존으로서의 신앙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과학 기술의 발달로 종교적 실존의 가치가 붕괴되고 있다. 인간의 실존 즉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길을 대신해서 영생하는 실존을 경험하게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떠할까? 그리고 만약 영원히 죽지 않는 삶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면, 생명의 바벨탑이 하나씩 올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죽음이라는 공포를 기술로 이겨낸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공동체의 소중한 가치들은 어떻게 변해갈까?

죽음을 이겨낸 존재, 호모 데우스(Homo Deus)는 더 이상 신을 찾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인류는 줄기세포와 유전자 편집 기술로 자신의 생명을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의 모습, 죽음을 두려워하고 신 앞에서 단독자가 되어가는 종교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더 이상 신을 찾지 않게 될 것이다. 오히려 인간은 과학을 신봉하고 그 기술을 의존하게 된다면 과학은 또 하나의 종교가 되어 인류의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가 될 지도 모른다.

앞으로 과학 기술 발달의 속도는 인류의 윤리적 반성을 추월하게 될 것이다. 인류의 윤리적 반성은 과학 기술의 혁명 앞에 속수무책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기술의 획기적인 변화는 인류의 욕망을 자연스레 끌어당길 것이다. 자연인으로서의 인간,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모습은 사라지고 서서히 과학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에 의한 인간이 되어갈 것이다. 우리 앞에 개와 늑대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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