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증명서’·‘장롱 속 운전면허증’
예수 당시의 유다인 세계관에 의하면 바다는 ‘악령의 서식처’였다. 그래서 풍랑과 같은 해상에서의 위험 요소의 원인을 악령과 같은 ‘신화적 요소’에서 찾았다. 하루 일정을 마감하고 일몰이 되었을 때, 예수와 제자단 일행이 승선한 배가 거센 풍랑으로 침수되자, 제자들은 배 선미창에서 베개를 베고 본격적으로 잠자는 스승을 깨워 이 난리통에 너무 무심하다고 원망한다. 단잠에서 깨어난 예수가 말 한마디로 바람과 풍랑을 제압하고 무력화시키자 바다는 평온을 되찾는다. 기상상황을 변조한 초자연적인 예수의 이 행위는 기상청 일기예보를 빗나가게 하여 오보라는 부대현상도 초래했다.
이 시점에서 예수는 제자들의 공포심의 원인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이 사건의 심각성은 “사건 발생 시점이 제자단이 예수의 불치병·난치병 치유와 같은 이적을 이미 경험한 후에 발생한 사건”이라는데 있다. 제자단은 신적 존재인 예수와 한 배를 탔지만, 예기치 못한 기상상황으로 인해 공포에 압도되었다. 거듭된 예수의 이적 사역을 직접 목격하고 참관했지만 자신의 생명을 담보해야만 하는 결정적인 극한의 상황에서는 자연스러운 자세를 견지하지 못하고 거듭 경악하기만 했다.
‘믿음’이라는 것은 보유하는데 의미와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는데 의미가 있고 그것의 핵심이 있다. 그들은 기존 신앙체험의 궁극적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 함으로 인해 그것을 신앙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제자단은 다양한 이적체험을 신앙의 차원으로 승화하고 내면화해야 했다. 이적을 표적(sign)의 차원에서 정의해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부족했다. 첨단 후기산업사회의 ‘탈종교적 상황’을 살아가는 개신교인들은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진지하게 반추(反芻) 해야 한다. 세례를 받고 성찬을 통해 주의 몸과 피에 참예한 자는 믿음을 ‘장롱 속 운전면허증’처럼 보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활용을 통해 역동적 신앙의 삶을 확대 재생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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