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즈음하여 20년 전의 제자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번 스승의 날 모임은 특별히 우이동 계곡의 펜션을 빌려 1박 2일 MT를 가기로 했다고 초대를 한 것이다. 지금은 벌써 33살이 된 첫 제자들이 아직도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을 잊지 않고 때마다 불러주니 늘 감동이다. 20여 명 가까이 모인 제자들과 밤이 깊도록 옛이야기도 하고, 인생 상담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행복한 추억 여행을 떠났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그 순간만큼은 13살 초등학생과 20대 초반의 처녀 선생으로 타임 슬립을 하게 되는 것이 참 신기했다. 각자 지닌 추억의 파편들을 하나 둘 맞추어 가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안 제자들 마음속에 자리한 잊지 못할 기억 속에는 공통적인 분모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행복감이다. 당시 6학년 8반 시절의 에피소드를 하나 둘 꺼내 놓는데 생각지도 못할 만큼 자세한 기억들이 있어 깜짝 놀라게 되었다. C군은 수업 시간에 친구들과 장난치다가 선생님과 딱 눈이 마주쳐서 혼나겠구나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성큼성큼 걸어오시더니 ‘으이그~ 이 개구쟁이들~’ 하며 어깨를 안아주셨다고 한다. 그 때 따뜻했던 손길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K양은 친구들과 모둠을 만들어 활동을 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그 때 모둠 이름이 ‘순두부’였다는 이야기까지 하였다. 또 L군은 꾀병으로 양호실에 누워있었는데, 선생님이 사색이 되어 찾아와 손을 잡아주시며 걱정해 주셨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G군은 선생님이 쳐 주시는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던 음악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고 하였다.
내가 그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억에 아련한 일들이지만 누군가의 마음속에서는 잊혀지지 않는 훈훈한 행복으로 남아있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면서도 한편 책임감이 느껴졌다. 교사로서 무심코 던지는 한 마디가 아이들에게는 인생을 좌우할 지침이 될 수도 있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하고, 사제 간의 관계가 옛날처럼 돈독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고들 하지만 작은 칭찬에 감동하고, 끊임없는 신뢰에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인 것 같다. 인간이기에 순간적으로 화도 나고, 실망도 하게 되지만, 이 아이들이 20년 뒤에는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멋진 역할을 해낼 인재들이라 생각하면 무심코 내 뱉는 잔소리라도 침 한번 꿀꺽 삼키고 참게 된다.
학기 초에 만드는 타임캡슐에는 20년 후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와 꿈에 대한 생각들을 가득 넣곤 한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있을 때 목표도 생기고 도전하려는 마음도 우러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하여 20년 뒤에 멋진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흐뭇한 마음으로 기도해 본다. 각자의 가진 재능을 잘 살려 멋진 인생을 꾸려가길 소망해 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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