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성경번역학자들의 과제, 좋은 역어(譯語)
내놓기 위한 번역자들의 분발을 간절히 원한다 

나는 1933년생으로서 우리나라가 일제에 압박당한 시절에 태어났다. 그 당시는 농작물을 공출(供出)이란 이름으로 수탈당해 아무리 애를 쓰고 농사해도 식량이 넉넉지 못했다. 그래서 곡식에 김치나 무채를 넣어 지은 밥을 많이 먹고 자라났다. 이런 밥을 ‘김치밥’이라고 했고 ‘무밥’이라고 불렀다. 내게는 김치밥이 먹기가 더 수월했다.
그리고 각 가정 특히 농사를 짓는 가정에서는 공출로 보낼 가마니에 쌀을 넣어야 했기 때문에 그 당시의 도량형기인 홉(合), 되(升), 말(斗)을 다 가지고 있었다. 한 홉이 열 개면 한 되, 한 되가 열 개면 한 말이 되었으므로 몇 말을 가마니에 넣어야 한 가마니의 쌀이 되는지 확실히 재어 공출에 응했던 것이다. 쌀을 kg으로 재서 두꺼운 종이포대에 넣어 팔기까지 우리나라 모든 쌀집에서는 이 홉, 되, 말이 사용되었다. 지금도 땅콩 같은 것을 홉과 되에 담아서 파는데, 그것을 볼 때 마치 옛 친구를 만난 것과 같이 반갑기 한이 없어서 얼른 사먹게 된다.
마태복음 5장 15절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1950년대 당시의 장년 신자들에게는 이 구절에 나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말하지 않아도 능히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수많은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어봤지만 이 ‘말’이란 단어의 뜻을 설명해 주신 분들이 없었다. 내가 자라날 때 농가와 쌀집에서 흔히 보는 그 ‘말’이 성경에 쓰일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나 역시 ‘말’, ‘되’, ‘홉’과 밀접한 생활을 해왔어도 이 성경구절을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 물으니 “뛰어다니는 짐승 ‘말’이 아닌가요?”라고 한다. 어떻게 사람 사는 방안에 커다란 말이 있을 수 있는가.
나는 도저히 알 길이 없어 할 수 없이 영어성경을 찾아보았다. ‘bushel’로 나와 있었는데 뜻은 ‘곡물, 과일 등의 중량 단위 : 8 gallons, 약 36 liters’ 라고 돼 있고, 영한사전에는 이 말씀으로 생긴 숙어인 ‘hide one's light[candle] under a bushel’이란 말이 ‘자기의 재능이나 선행 등을 겸손하게 감추다, 겸허하게 행동하다’의 뜻으로 쓰인다고 설명하였다. 예수님은 그처럼 너의 빛을 세상에 밝히라는 뜻으로 말씀했는데...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농촌에 사는 국민들 그 누가 방안에 말, 되, 홉을 두고 살겠는가. 내 생각에 전기가 없는 비 문명국에서는 아직도 등잔을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들의 집에 곡식의 중량을 재는 그릇이 있다면 등잔을 켜서 그 그릇 속에 두면 그 곳만 밝을 테니 등경에 걸어놓아야 된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다른 성경에는 어떻게 되어있는지 살펴보았다. 우선 내게 있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발행한 성경에는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라고 되어 있다. ‘함지’? 이희승 박사의 국어 대사전에 ‘함지’는 순수한 우리말로 “나무로 네모지게 짜서 만든 그릇”이고 ‘함지박’은 “통나무의 속을 파서 전이 없이 큰 바가지 같이 만든 그릇”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문장에 나오는 ‘전’은 손잡이가 아닌가 생각된다.
일본성서협회에서 1977년에 출판한 성서에는 ?[ます]라는 단어로 쓰였는데 사전을 보니 “마스[升]은 액체, 곡물의 양을 재는 네모난 용기이며 ? 라고도 쓴다”고 되어 있다.
중국어 성경에는 ‘不放在 斗底下’라고 되어 있는데 ‘斗底下’가 우리성경의 ‘말 아래’와 똑같아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斗는 ‘말 두’ 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말씀보존학회 새성경을 보니 “곡식 되는 말 아래...”로 되어 있어서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곡식 되는 말’이라고 썼더라도 ‘곡식을 되다’란 말을 평소에 전혀 쓰지 않는 우리 국민들은 “되다”란 동사와 그 도구인 ‘말’의 뜻과 모양을 모르면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고 이해하더라도 겨우 70대 이상의 노인층밖에 없을 것이다.
영어성경은 어떤가? 아까 bushel은 King James Version의 것이고, New King James Version에서는 “Nor do they light a lamp and put it under a basket, but on a lampstand, and it gives light to all who are in the house”라고 쓰여 있다. 여기 basket는 바구니, 광주리의 뜻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옛 생활방식이 아닌 영어사용국민들의 생활양태에 맞게 표현하여 이해하기 쉽게 했다. 즉 방안에 두는 광주리나 바구니로 표현한 것이다. New International Version[NIV]성경에는 어떻게 쓰여 있을까? ‘under a bowl’이라 하여 ‘운두가 높은 사발, 주발’이라고 되어 있다. a rice bowl 밥사발, a sugar bowl 설탕단지 그리고 우리말 “운두”는 그릇둘레의 높이란 뜻이 나와 있다. 그럼 Good News Bible은 어떤가? 거기서도 bowl이라고 썼다. The Living Bible에서는 15, 16절을 합해 “Don't hide your light! Let it shine for all; let your good deeds glow for all to see, so that they will praise your heavenly Father” (네 등불을 감추지 말라. 그 등불로 모두에게 비취게 하라. 네 착한 행실을 모두가 보도록 빛나게 하여 그들이 네 하늘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현대 미국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의역하였다.
독일어 성경에는 “Man z?ndet auch nicht ein Licht an und setzt es unter einen Scheffel, sondern auf einen Leuchter; so leuchtet es denn allen, die im Hause sind.”라고 쓰여 있으며 ‘Scheffel’의 뜻을 찾아보니 ‘곡량의 옛 단위로 지방에 따라 30-300리터로 일정치 않다’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영어 흠정역과 같다.
불어 성경엔 ‘le boisseau’로 돼 있는데 옛말로 도량형 약 13리터들이의 말(斗)이라 하여 대동소이하게 쓰고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한국인의 생활에서 이 ‘말’은 어떻게 써야할까? 이제, 21세기 성경번역학자들의 과제가 주어졌다. 좋은 역어(譯語)를 내놓기 바란다.
나는 하도 신기하여 신학대학에서는 어떻게 가르치는지 어느 목회자에게 물었더니 ‘되, 말’로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정규신학대학이 아닌 특수과정을 이수하여 안수 받은 목회자 중에 “뛰어다니는 말이 아닌가” 또는 “모르겠다”란 답이 나와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이밖에도 외식(外飾)도 외식(外食)과 혼동이 되는지 어느 목회자는 “저는 어렸을 때 식당에 가서 외식을 하면 예수님이 벌주시는 줄 알았습니다.”라고 하여 웃은 일이 있다. 새 성경에는 ‘위선자’라고 번역해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해 두었다. 지금 한자성경을 읽지 않는 한글세대는 이 외식을 전혀 모르고 있고 ‘말’(斗)은 노인들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 번역자들의 분발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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