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새해가 밝았다. 소망과 비전으로 시작한 새해가 우리에게 무엇을 안겨 줄 것인지 기대로 가득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정말 잘 살기 위해서는 그리고 1년을 더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는 인류가 생긴 이래 가장 확실한 명제인 ‘죽음, 마지막 날’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해 보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미 언급한대로 더 의미 있는 삶, 부끄럽지 않는 2011년이 되기 위해서. 소크라테스도, 공자도, 맹자도, 부처도 죽음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그 만큼 모든 인간은 귀천(貴賤)에 상관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죽음은 생물(生物)이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필수적 관문이다. 이렇게 필수적 관문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한 상식도 없고 죽음을 준비하는 교육조차 없이 무조건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망각의 동물이기도 한 우리는 그 죽음에 대한 모든 것을 잊고 살면서 영원불멸할 것처럼 과욕을 부린다. 사전에 나와 있는 의학적인 죽음의 정의는 생의 종말을 뜻하며 개체를 구성하는 전 조직세포의 기능 정지 상태를 말한다. 즉, 죽음의 종말은 심장고동과 호흡운동이 정지되어 원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삶의 시간과 공간에서 분리되는 시점에서 죽음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단절 의식은 우리에게 죽음 이후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심어주게 된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들로부터의 분리 의식이 죽음을 비통하고 슬픈 사건으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이는 자신에게 닥쳐온, 철저한 무력감과 배척감의 결과로서 죽음의 인식을 어둠의 긴 터널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개똥밭에 나뒹굴어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훨씬 낫다”라는 속담이 있듯 세상의 삶이 죽음 이후의 세상보다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을 기피하게 되고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엄마의 자궁 속에서 열 달을 떠 있으면서도 현세(現世)를 알 수 없듯 또 다른 미지의 세계가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울러 세상에서 가진 것에 대한 집착과 끝없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더 더욱 죽음을 멀리하고 싶은 심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로 이 땅에 태어나 생을 살아가면서 채우기에만 급급했기에 버려할 것을 버리지 못한 채 한 생을 살아왔다. 채우기 위한 욕망으로 살아온 삶이기에 언제나 허무한 마음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런 욕망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가장 나약한 상태에서 두 손을 펴고 아쉬움을 가슴에 묻어둔 채 남은 자들과의 슬픈 이별을 고(告)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10년 동안 암(癌)으로 투병하다 최근 세상을 떠난 한 시인(詩人)은 ‘유교 집안이 자신으로 인해 기독교로 개종한 것을 좀 더 기념하기 위해 자기 무덤 앞에 시비(詩碑)를 세우겠다’며 시문에 사랑을 노래한 ‘아가’의 말씀을 새겨놓고 싶다고도 했다. 또한 40여 편에 달하는 시들을 정리해서 시집을 만들겠다며 시들을 정리해달라고 아주 덤덤하게 부탁을 하기도 했다. 정신이 좀 맑아지면 40여 편의 시들을 찾아 주겠다고 약속했던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 한(恨) 많은 이 세상을 떠났다. 문득 ‘죽음을 가장 큰 선물’로 정의하며 장례식에서 축하의 잔치를 베풀어 달라던 위대한 영성가 헨리 나우헨의 유언이 생각난다. 그는 유언을 통해 죽음을 삶에서 분리시킨 것이 아니라 삶의 연장으로 보고 결속시키는 열매로 생각했다. 또 삶의 열매로서의 죽음은 생(生)의 종말이 아닌 자신의 삶을 다른 이들에게 선물로 드리는 것으로 정의를 내렸다. 살아서는 갈 수 없는 길, 홀로 가야만 하는 여행길, 누구나 거부할 수도 없고,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외로운 그 길을 따라 떠나야만 하는 우리다. 그 길을 떠나야 하는 우리네이지만, 아무래도 내게도 찾아올 죽음을 밝은 빛으로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예수님의 죽음이 부활의 서막을 여는 우주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이 된 것처럼 죽음의 진정성은 마지막 자신이 남은 이들에게 어떤 열매를 맺고 가느냐에 달렸다. 부질 없는 짓인지 알지만 자신의 영정 앞에 몇 사람이나 찾아오고 또 몇 사람이나 슬퍼할까를 간혹 생각도 해봄직하다.

‘인생은 고달프다. 멍청하면 인생은 더 고달파진다’고 하는 명언이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의 길이 인생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결인 모두는 잘 죽기 위해 더 잘 사는 신앙인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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